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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Aug 23. 2023

16년만에 손댄 콘텍트 렌즈.

아무리 16년만이라도. 그 습관함이란.

'230823


16년 전에 라식수술을 했다. 라섹이란 단어를 아무도 모를 시절이었을거다.

안과 의사는 정작 라식을 절대 하지 않는다더라,  첫 세대라 몇십년 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더라, 부작용이 어떻다더라... 많은 말들이 있었으나, 나의 눈을 밝혀준다는 혁명스런 이슈 아래 그 기분 나쁜 가설들은 내게 전혀 두렴의 요소가 되지 못했다. 눈에서 오징어 타는 냄새가 나는 라식수술을 끝내고, 일주일간 자나깨나 썬글라스를 착용한 후 내겐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손으로 안경을 더듬는 일이 사라졌으며, 건조한 렌즈 때문에 눈알이 뽑힐것 같은 아픔을 더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끼얏호. 그야말로 뉴라이프였다.


어언 16년이나 그 눈으로 잘 버텨왔다.

2019년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고 모니터에 열중해야하는 일과 종이를 뚫어져라 봐야하는 일들을 거치면서 시력은 점차적으로 나빠졌다. 그리고 운전과 반주 시에는 꼭 안경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안경의 도수 또한 계속 높아져갔다.


나 혼자만의 요상한 생각일지 모르나, 난 안경과 (살짝 치렁한) 귀걸이 목걸이를 같이 착용하면 무언가 거추장스러워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그다지 여성스런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귀와 콧볼에 걸치는 순간, 어쩐지 보이시함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따라서 나의 안경 복장은 때마다 유사한데, 캡모자에 머리는 뒤로 쑤욱 빼고, 안경, 딱달라붙는 귀걸이, 티셔츠, 편한 바지, 슬리퍼 정도.


빙뱅 돌려말했으나, 단도직입적으로 적어보자면, 그래, 한껏 꾸민 날에 나는 말이지, 안경을 쓰고 싶지 않은 그런 거. 뭐 그런 거. 라식 경험자에게 렌즈가 좋지 않은것이야 당연하겠다만, 나는 기어코 렌즈 구매대 앞에 섰다. 그리고 워낙 안구건조증이 심한 편이니, 저가 렌즈보다 촉촉함이 4배나 많다는 번지르르한 스펙을 가진 초콤 비싼 렌즈를 구매했다. 그리고 오늘, 16년만에 그 렌즈를 내 눈알에 끼워넣었다.



나의 렌즈 착용 역사기를 거슬러 올라가려면 할애하는 지면이 많아야만 한다.

스무살부터 렌즈생활을 시작했으며 소프트 하드 온갖 렌즈들을 다 섭렵하였으나 끝끝내 렌즈가 내 안구에는 맞지 않았다는 그런 슬픈 종류의 이야기들. 이 건조한 홍채 위에 자리한 내 하드렌즈는 결국 안착하지 못하고 튀어나와버려 명동 한복판에서 내 눈알을 찾아헤매었다는 그런 지리멸렬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쨌든, 나는, 그 애증관계인 렌즈를 16년만인 오늘, 내 안구에 안착시켰다!

아주 재미로웠다.

오랜만에 렌즈를 착용하려니 듀근듀근. 아우 재미져.

일단 손을 깨끗이 씻고, 일회용 렌즈 알루미늄 뚜껑을 벗기고.

오호, 요놈이 여기 있구나. 내 오른쪽 검지로 렌즈를 옮기고.

거울을 보고선 왼쪽 검지와 오른쪽 중지로 아래 위 눈을 벌리고.

검지에 맺혀있는 렌즈를 내 왼쪽 눈에 가져가고.


어머. 16년만인데, 어떻게 렌즈를 꼈었는지 너무나 명확하다.

그래, 눈동자를 위로 들어야하지, 그다음에 검지에 붙어있는 렌즈를 눈에 챡.

들어갔으면 눈을 몇번 깜빡깜빡여주고. 오. 이거 네배 촉촉하다더니 진짜 괜찮네, 이물감이 별로 없어.


그렇게 왼 오른 다 성공적으로 렌즈 삽입을 마치고 전신거울을 본다.

안경이 없이 비교적 선명하게 나를 보는건 꽤 오랜만이다. 우왕. 렌즈 세계로 다시 들어왔네.


볼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8시간 이내로 착용하라는 권고를 야무지게 지키고선 렌즈를 빼려는 찰나.

1차 실패. 손에 물기 없이 다시한번. 한번에 양쪽 다 성공.



기억이 난다. 기억이 나.

20대 초반에 한참 매일을 반복했던 그 행동을 어느날 갑자기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고, 그 이후로 16년간을 완전히 잊은채로 살아왔는데, 다시 동일한 행동에 돌입하니 이렇게 익숙할수가.

반복했던 그 때의 그 일련의 과정들은 꽤 많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어디로 도망하지 않는다는 것.


살짝 두련 맘이 있었다. 음악치료 임상, 잘할수있을까. 분명 1년도 안된 시간들에서 잘해냈었는데, 논문과 시험 등에 시간을 투자하면서 임상은 벌써 아득해진 터였다. 이제 이틀 뒤 졸업. 졸업 후엔 정말 일자리를 구해야는데. 나란 사람, 잘해낼수 있을까.


16년만에 착용한 렌즈가 쉬이 들어갔던것처럼, 분명 그때의 시간들이 아직 몸과 뇌에 남아있을것이라 믿어본다. 또한 동일한 원리로, 아직 제대로된 경험이 없는 분야가 낯설고 두렴이 앞설지라도, 반복적인 루틴들을 견디다보면 몇년 후 어렵지 않게 해내고 있겠지.


이제, 정말. 졸업. 새로운 시작이다. 4배 촉촉 소프트렌즈와 함께... 나 정말, 시이—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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