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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Aug 31. 2023

엄마, 나 떨어졌어.

당신의 딸이 3학년 반장선거에서 딱 한표 받고 떨어졌다면?

'230828.


3학년 1학기, 말없이 반장선거를 지켜보기만 했던 딸이 큣한 결심을 하나 하였으니, 그것은 2학기땐 꼭 반장선거에 나간다는 것. 딸은 1학기 내내 이런저런 모양으로 2학기 반장선거를 꿈꾸고 그리며 기대했다.

여름방학에도 이야기를 종종 했고, 개학 후 그날이 다가올수록 대화의 주제에서 '반장'이란 단어가 자주 올랐다.


드디어 그 날. 딸은 여섯시쯤 기상하더니 책상에 앉아 뭔가를 죽죽 적어내려갔다. 제법 진지했다. 나는 자는 척하며 연필 굴러가는 소리에 집중했는데, 오우, 연필이 꽤 신명나게 슥슥 굴러가고 있었다. 딸은 일어난 내게 본인의 공약을 조잘조잘 설명해주었다. 나 또한 진지하게 공약의 어떠한 부분들은 좀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겠다 등의 의견을 내었다. 딸은 엄마의 이야기에 오랜만에 귀를 기울였고, 이런저런 연습 끝에 자신의 말로 어여쁜 문장들을 만들어냈다. 야심차게 학교를 등교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은근 기대치가 올라오는것은 어쩔수없는 엄마의 마음.



오후 네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딸이 들어온다.

동생이 뛰어나가면서 묻는다.

"언니 반장됐어??????"


"아니?"

 아무렇지도 않은(척) 목소리가 들려온다.


은근 기대했던 엄마의 속마음은 들킬수 없지. 일단 엄마도 아무렇지 않은(척) 모습 장착.

"아이고 고생했네 우리 딸."


맛난 간식 하나 주면서 반장선거 이야기를 듣는다.

본인이 몇표 나왔는지는 생각이 안난단다. 처음에는 조금 속상해서 눈물이 날것같기도 했지만, 반장 부반장이 된 내 친구들이 자랑스럽단다. 전혀 쿨하지 않은데 쿨한척 하는 딸이 못내 짠하다.


조금씩 대화가 깊어지니 결국 딱 한표 나왔으며, 그것도 본인이 스스로 써냈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래도 0표 나온 친구도 있단다. 그 친구는 자기 이름을 안썼단다. 아이고야.

6명이 반장선거로 나왔고, 반장이 된 아이가 절대적 지지를 받은 모양이다. 초3 아이들 표현으로 "인기스타"인 그 스타친구가 반장이 된 것. 그러면서 하는 말.

"근데 진짜 이상한게 내가 공약 제일 잘 발표했거든? 근데 애들이 나를 안찍은게 좀 이상해."

하하하...


아무렇지 않은 척을 내내 하면서 위로에 탕후루에 따스한 말들에 거 친구들 참 이상하네 엄마는 네가 최고다 자랑스럽다를 열댓번 이상 반복했으나 나도 속이 살짝 시끄럽긴 하였으니, 짠하기도 아쉽기도 염려스럽기도.

낯가림이 심하고, 상처를 쉬이 받고, 감정을 예쁘지 않게 드러내고, 자주 토라지고, 눈치보고, 감정 기복 심하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그녀와 나 또한 얼마나 지난하게 서로를 고생시켰는지. 딸의 면면들이 지나가면서 혹 친구 관계가 현재 많이 어려운건 아닌지, 먼저 벽을 치는건 아닌지 여러 장면과 생각들이 올라온다.


반장에 대한 이슈가 있었던 월요일,

친구에 대한 이슈로 진지하게 꾸중했던 화요일,

동생에 대한 이슈로 크게 혼냈던 수요일..을 거치며 아인에 대한 상한 마음들을 겪어낸 후 내가 내린 결론.


그녀를 맞을 때마다, 대할 때마다 환하게 웃자.


고작 열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무언가가 들어있을지.

반장선거에서 (본인 제외) 한표도 나오지 않은 그 사실에 크게 주눅들지 않길.  

한번의 실패에 아랑곳않고 4학년때도 5학년때도 반장선거에 나갈 수 있는 쿨함이 폴폴하길.

3학년 2학기 인생 첫 도전이었던 선거에 참패한것을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단단한 아이로 자라길.


밖에서 쭈그러졌으면, 안에서 엄마가 펴주꾸마. 오늘도 환하게 웃으며 안아줘야지 자랑스런 내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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