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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Oct 23. 2023

나 이제, 음식을 좀 잘 하는것 같아.

골뱅이묵무침 정도는 뭐 휘리릭.

_231016 월.


어디 보자, 오늘은 또 어떤 음식을 해야하나.

냉장고를 뒤적뒤적, 있는 재료들을 살피고 이들의 조합을 생각한다.

해치워야 하는 상추와 깻잎이 꽤 많이 있고, 저기 냉장고 문쪽엔 이전에 사두었던 골뱅이 통조림이 보인다.

골뱅이 무침을 해볼까. 잠깐 레시피 검색을 해보지만, 내게 남아있는 재료들과 딱 맞아 떨어지지를 않는다. 온통 소면과 오이 당근 이야기 뿐이네. 맞다, 어머님이 지난주에 주신 도토리묵도 있었지. 그럼 뭐 그냥 모조리 섞어서 내스톼일대로 갑시다. 레시피는 잠깐 저리 가세요.


씻어놓은 상추와 깻잎을 좀 큰 덩어리로 저벅저벅 찢는다. 도토리묵은 먹기좋은 크기로 수욱수욱 썰어놓고, 양파는 최대한 얇게 챡챡챡챡. 통조림에 있는 골뱅이물은 체에 받쳐 촤악 빼놓고 골뱅이만 건진다.

지난번에 구매하여 신명나게 잘 쓰고 있는 커다란 원형 통을 꺼내어 준비한 재료를 촤라라락. 자 이제 양념 차례. 고춧가루 2스푼, 고추장 1스푼, 설탕 2.8/4정도, 들기름 듬뿍, 간장은 초큼, 다진마늘 한스푼, 그리고 지난 명절때 어머님이 볶아준 깨를 그냥 왕창 왕창 부어버리고선 조물조물... 했더니 어맛. 너무 맛나.



주부를 11년째 하고 있었더니 이런 날도 온다.

"냉장고 속 남아있는 재료 눈검색 -> 조합해도 괜찮겠다 싶은 음식 유추 -> 대충 감으로 수욱 수욱 = 맛난 음식"

마무리는 고추장 고춧가루 들기름 깨 도토리묵의 출처이자 근원지이신 어머님께 감사문자로. (주신 재료를 맛나게 만들어 사진 찍어 보내면, 그렇게도 좋아하신다.)


레시피를 보지 않고 대강 슥슥 하였을 뿐인데 꽤 맛날 때는 엄마부심 아내부심 주부심이 촤라락 올라가는데 이런 은근한 기분좋은 자기애에 다들 그렇게 음식을 하는 것일수도. 많이 성장했고 많이 자랐고나. 막 결혼했을때는 나 음식하는 것이 그렇게도 두렵고, 무섭고, 하기 싫고, 어려운 영역이었는데.(물론 지금도 즐거운 영역은 아님) 10년 후엔 더 잘할거고 더 맛있을거야. 스스로가 뿌듯한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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