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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Jul 04. 2024

<그림자>북리뷰

인사이드아웃2의 주제를 다루다! 과연 융은 그러했던것. by 이부영

For Guided Imagery Music [Book Report]


 이번에 선택한 세 번째 책, [그림자]를 읽으면서,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와 유사한 맥락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내게 어스름하고 어렴풋했던 그림자의 의미가 이전보다 선명하게 와닿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란 사람은 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알아가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음을, 그래서 나에게 그림자의 개념이 아예 낯설거나 먼 개념은 아니었음 또한 새삼스레 깨달았다. 


할아버지 목사님, 큰아빠 목사님, 아빠 장로님, 엄마 권사님.. 온갖 교회 문화 속에서 불상을 무서워하며 자라난 나는, 20대 시절 나의 이중성 혹은 어두운 면들과 마주하며 괴로워하곤 했다. 비슷한 시기 성경을 읽고 있는데, 깜짝 놀랄만한 문장을 발견하고 말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을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습니까?” 바울 선생님의 고백이었다. 바울과 같은 위대한 선생님도 그랬다는데!의 심정으로 나를 꿰뚫는 듯한 이 고백을 위안 삼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나 자신의 위선과 거짓인것만 같은 자아로 괴로웠던 적이 많다. [그림자] 책을 읽으면서 이 바울의 고백, 내가 고민했던 부분들이 그림자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융이 정의하는 그림자란 정확하게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여러 문장으로 그림자를 설명해준다. 그림자를 조금 쉽게 이야기하자면, 자아 컴플렉스의 어두운, 아직 살지 못한, 억압된 측면이자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리가 모르는 마음이며, 부분적으로는 개인적이고 부분적으로는 집단적인 요소로 이루어진다. 그림자는 낡은 방식들, 낡은 인격, 안일한 것들, 인격의 열등한 부분, 부정적 측면이며 감추어진, 바람직하지 않은 성질의 총화, 잘 발전되지 못한 기능들이고, 강렬한 저항에 의해 억압되고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물론 융은 그림자를 창조적 능력을 지닌 것이라고도 정의 내린다.) 


 이 어두운 면, 비참한 면, 즉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을 융은 일생일대의 과업이라고 말한다. 그림자는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통을 통해 만날 수 있으며, 그 고통 속에서 의식화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 그리고 내 그림자를 인식하고 의식화하여 자신의 그림자를 용인하는 것. 그러나, 용인을 통해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코 세상 밖으로 내고 싶지 않은 그 어둔 면을 내놓고 진지하게 그 처리를 고민하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그림자를 의식화하여 무의식을 보는 능력을 더욱 분화시켰던 융 학파의 한 분석가가 나오는데,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에 갇혔었고, 꿈에 극악무도한 히틀러의 얼굴을 보게 된다. 깊은 충격에 사로잡힌 그는 나의 마음속 히틀러가 살아있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내 마음이 그렇게 악하다면 죽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때 수용소가 해방되어 죽음을 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용소를 나와 융 분석을 받고 훌륭한 분석가가 되었단다. 물론 이 이야기는 매우 특별하고 모두에게 통용될 수는 없지만, 극악무도한 히틀러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할수 있었던것 만큼은, 다시말해 자신의 어둡고 악한 모습을 고통 속에 인정한 것은 깊게 생각해 보암직한 영역이다. 


나는 또한 이 책에서 정신병리현상과 그림자 파트를 눈여겨 읽었는데, 가이드로서(혹은 음악치료사로서도) 앞으로 크고 작은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내담자들을 만날 수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우울증 또는 화병에 걸린 경우를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사회집단이 요구하는 규격화된 태도와 역할에 충실하다보면 자기의 내면세계를 전혀 돌보지 못하고 내버려두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외부사회에 대한 적응 못지않게 내면세계에 대한 적응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고, 그 내면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실천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사회적 요구만을 일방적으로 충족시키면, 억압된 무의식이 의식을 압박하기 시작하며, 이것이 극에 다다르면 불어난 강물이 둑을 무너뜨리듯 무의식의 콤플렉스들이 의식을 휩쓸어버리게 되는 것. GIM을 통해 우울증이나 분노에 가득찬 내담자가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여 전체정신을 실현하는데 다다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교수님이 늘 말씀하셨던대로 침대 위 놓여져있는 침구와 쿠션은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질수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이른바 그림자 없는 사람으로 불려지는 사람들, 사회집단이 요구하는 선한 마음과 행위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온갖 사회 악에 대해 연민의 정을 가지거나 멸시하는 사람(자칫 내가 그런 사람이 될수도 있었다!)은 위선자이거나 이중인격자일 가능성이 크다. 신이 아니기에 모두가 그림자를 가질 수 밖에 없으나, 인정하지 않는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기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나 가족에게 옮겨놓는다고 한다. 이른바 ‘한’을 오랫동안 억압하여 자녀에게 ‘한풀이’를 하게 된다면… 결국 자식의 정신장애라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것은 그림자를 인식하는것! 가이드로서 나는 이러한 특성을 가진 내담자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할 수 있도록 심상을 통해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거듭 작성하고 있지만, 나의 어두운 면들을 마주하고 고찰하는 것을 20대 시절부터는 줄곧 해왔고, 사회에서 모두가 용인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어떤 이의 어두움이 내게도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온 것을 볼 때, 이제는 나의 이러한 통찰들을(그림자의 정의를 모른채 쌓아왔던) 이론적인 개념으로 체계화할 때이며, 그림자 세계를 탐험하고 내담자들에게 도움을 주기에 나의 고통들이 허투루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자는 열등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보통 인식하기를 꺼리지만, 신경증적 장애를 앓거나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만이 그 통찰이 긴급히 필요함을 느낀다고. 고통을 겪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고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자기성찰의 귀중한 기회를 갖도록 선택된 사람이라고. 그리고 저자는 내가 책을 읽어내려가며 최고의 문장이라고 왕별을 붙여놓은 빛나는 말을 해준다. “궁극적인 목표는 어둠이 아니라 어둠을 통한 빛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다시 말해 그림자 속에 숨은 빛을 나타내게 하는 것. 검은 그림자는 살림으로써(표현하고) 변하여 환한 실체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말은 내가 평생 가져가야할 문장이자 정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그림자를 만나면서, 또 내가 만나게 될 다양한 내담자들이 그림자를 마주하도록 도우면서 계속 새겨나가야 할 정신.! 융이 말했듯 그림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와 더불어 사는 법을 가이드인 나도, 트래블러도, 우리 모두가 일생동안 배워나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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