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휴게소에서 간식과 점심을 먹은 뒤, 서울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반 만에 대관령 양떼목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풍력발전기를 뒤로 한 채 양떼목장을 올라가는데, 바닥이 온통 흙바닥이라 얼음이 녹은 물로 질척거렸다.
아니 왜 이 관광지에 도로에 아무것도 안 깔아놨지?
라고 생각을 하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이곳의 본질은 목장인데, 목장 가는 길을 굳이 포장할 이유도 없던 것이었다.
여긴 관광객이 주인이 아니고, 양들이 주인인 곳이니까..
이렇게 질척거리는 흙길을 걸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매번 포장되있는곳만 걸어봤던 꼬맹이는 물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매번 신발 바닥을 확인해 가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것 나름대로 즐거운 순간순간이었다.
그래 일상이랑 같을 거면, 여행을 올 필요가 없지.
평소에 못 보던 꽉 찬 파랗다 못해 퍼런 하늘을 보는 것도 여행이라면,
질척 질척 질척거리는 이 진흙탕 바닥도 우리의 여행의 일부일 것이다.
겨울이라 양은 방목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보고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눈 쌓인 목장을 보니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다했다
아무 곳이나 찍어도 그림 같다. 보정을 하지 않아도, 완벽한 색감이 나오는 하늘이
"엄마 하늘이 파란색 같기도 한데 파란색이 아니야~."
이렇게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걸로, 3시간 반을 달려온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똥냄새가 좀 나는 축사에서 귀여운 새끼 양들과 열심히 몸을 나무에 긁어대던 양을 실컷 구경하고, 먹이 주기 체험을 하러 갔다.
"악~물리면 어떡해~!"
"꺄~ 핥는 느낌이 이상해~!"
"얘는 얼굴이 너무 커서 무섭게 생겼어~!"
호들갑을 떠는 아이 앞에서 양들의 얼굴은 시크 그 자체였다.
이런 애들 한 두 번 보는 게 아니라는 듯이..
앞에서 줄듯 말 듯 먹이를 손에 잡고 다가왔다 멀어졌다가를 반복하는 아이를 보다가 얘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다.
다른 먹이 주기 체험하는 곳에서는 사람이 먹이를 줄 것 같으면 주위의 모든 동물이 몰려들었는데, 이곳 농장의 양들은 그저 느긋하다.
언제 주나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메너 양
옆에 양만 먹이를 먹어도, 주둥이를 들이미는 일도 없다.
그저 자기 앞에 사람이 오면 조용히 줄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이런 매너 있는 양들을 보았나...(아니면 배가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써니 혼자만 두근거렸던 건초주기 체험이 끝나고, 우리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나는 언덕을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
아이와 나의 입장료 다 합쳐봐야 11,900원.
양을 봤고, 먹이 주기 체험도 했고, 풍력발전기도 봤고, 탁 트인 목장을 봤으니 이 정도면 값어치를 했다고 생각했다. (난 그만 가고 싶단 말이다..)
하지만 앞서 달려서 언덕을 올라가는 아이는 멈춰 설 생각이 없었다.
어쩐지 올라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불안했고, 표지판에 '아이젠 없이는 올라가지 마세요"라고 쓰여있는 것이 좀 불안했다.
뭐 그런데 이 눈에 훤히 보이는 언덕에서 문제가 생길까 싶었다.
(약간 불안했을 때 멈췄어야 했다.)
정상까지 올라가니, 대관령 설산의 산맥이 한눈에 보였다.
"밑에선 눈 쌓인 산이 보였는데, 위에 올라오니까 풍경이 보여~!"
천사나라 약발도 다 떨어질 때가 되었는데, 아이의 멘트는 날이 갈수록 싱그러워진다.
진짜 풍경이다.
아직도 눈이 소복소복 쌓여서 하얗게 분칠 한 듯한 고운 산의 풍경이 눈에 와서 박힌다.
내가 양떼 목장에 올 때 기대하던 것은 오로지 양구경뿐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아이가 올라오지 않았으면, 이 풍경을 못 보고 갈 뻔했다. 다행이다.
풍경을 실컷 즐긴 뒤 반대쪽으로 내려가는데, 아뿔싸, 여기는 눈이 잔뜩 쌓여있었다.
아이가 푹 밟으면 아이 무릎까지는 족히 들어갈 정도 깊이의 눈이 길 아래까지 쭈욱 쌓여있었다.
그나마 녹은 울타리 쪽으로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얼음이 어정쩡하게 녹은 터라 엄청 미끄러웠다.
신발도 다 젖고, 아이가 다칠세라 긴장을 잔뜩 하면서 정말 조심해서 내려오는데,
걱정하는 애미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이는 신났다.
어차피 사람도 없고 바람이 싸대기를 쳐대서 정신이 없으니, 나도 정신줄을 놓고 웃게 된다 왠지 조난당한 상황에 처한 사람 역할극을 하는 것 같았다.
여차저차 살아내려 와서 아까 먹이 주기 체험장을 하던 축사의 뒤쪽으로 내려왔다.
거기에선 연한 갈색과 진한갈색의 점이 박힌 고양이가 사람들도 개의치 않고 따뜻한 햇살 아래 식빵을 굽고 있었다.
도심에서는 이렇게 고양이를 자세히 볼 수 없는 아이는 고양이가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며 그 앞에서 고양이를 구경했다.
그저 힐링되는 투샷
귀여워 귀여워 이러면서 감히 만져보지도 못하고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햇살 내리쬐는 농장에서 고양이와 아이의 모습이라니..
아, 이런 맛에 아이랑 여행 오는구나. 내가 힐링이 된다.
그나저나 춥다... 이제 가자, 아가..
아이와의 추억을 영상으로도 남기려고 노력 중입니다.
양떼목장에 관한 영상은 아래 링크에 걸어놓을 테니, 즐겁게 봐주세요~^^
https://youtu.be/H14H9i85Sn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