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여행이 특별해지는 이유
강릉에서 중앙시장을 가는 중에 00 용궁이라는 맨션이 보였다.
나 : "써니야~ 저기는 용궁 아파트래. 인어공주가 사는 곳일까?"
써니 : "아니 엄마 인어공주가 어떻게 밖에서 살아?"
나 : "사람으로 변신해서 사나 보지."
그러고 나서 지나가는데, 아이가 한마디 한다.
"모두 다 15살 넘었나 보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생각했다가, 이해하고 빵 터졌다.
인어공주는 15살 생일이 지나야지만 뭍으로 올라올 수 있다. 이미 밖에 나와서 살 수 있는 인어공주들이니, 모두 15살은 넘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다.
엄마가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네?
6살에게 질 수 없어서, 사족을 붙여본다.
나 : "그럼 맨 위층은 용왕이 사려나?"
써니 : "아마 포세이돈이 살지 않을까?"
이거슨 세계관의 충돌, 대 유니버스의 세계구나..
조만간 별주부와 손오공도 등장할 기세다.
아이와의 여행은 이런 것이 즐겁다.
나의 눈이 아닌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다.
아마 혼자 왔거나 어른들끼리 왔으면, "바닷가 도시라고 용궁아파트도 있네?" 이러고 금방 잊혀버렸을 풍경이었을 것이다.
결혼 전에 혼자 여행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대기업을 다니는 미혼여성이니 돈은 상대적으로 풍부했고, 시간은 늘 부족했기 때문에 며칠의 휴가라도 나면 무조건 해외로 나갔었다. 이미 한국여행은 질린 상태였다.
그나마 대학생 때는 같은 숙소를 쓰는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밥 먹다가도 친구를 만들기도 하고,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면서도 대화를 트기도 하고 그랬었다. 여행지의 활기 넘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모든 광경이 신기하고, 모든 음식이 흥미로워졌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질문할 일도 없었고, 혼자 있는 시간도 늘 핸드폰을 쳐다보게 되어 모르는 사람들과 친해질 일도 없어졌다. (어차피 헤어지게 될 누군가와 사귀고 싶은 심적 여유도 없던 시절이었다.)
이국적인 음식도 거기서 거기인 느낌이고, 풍경도 건물도 다 고만고만한 것 같고, 결국 인증샷밖에 남지 않는 처절하고 외로운 여행이었다.
(#이국적#너무예쁨#돈많이쓰게생김#혼자여행######...해쉬태그 한가득 인생)
그런데 지금은 걸어 다니면서 핸드폰 따윈 보지도 않고, 모든 것이 새로워서 눈이 반짝 거리는 아이와 같이 여행을 하고 있다. 어차피 같은 대한민국에 뭐가 그리 다를까만은 아이는 작고 소소한 것도 발견해 내고 "엄마 저거 봐봐~!" 하고 연신 소리 질러 댄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꾸 아이의 시선으로 여행지를 관찰하게 된다.
즐겁다.
여행이란 이렇게 순간순간 감탄하게 되는 것이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아이의 순수함 덕에 내가 다시 순수한 시선을 갖게 된 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만의 특권인 것 같다.
내가 너를 위해 여행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네 덕에 내가 진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