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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지 Apr 30. 2023

12주년 기념

휠체어 타고 10km 마라톤 하기

1년이 또 흘렀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이 있었던 1년이었다. 


1. 팀장이 되었다. 직무를 바꾼 느낌이라 새롭고 재미도 있으나 많이 바빠졌다.
2. 안면마비가 재발해 입원했다. "올해 입원 안 하기"가 목표였던 시기도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병원 안 가고 잘 지냈는데 연초부터 실패했다.
3. 헬스를 시작했다. 4개월 된 헬린이, PT 선생님 덕분에 강해지고 있다.
4. 남편이 CTO로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난 오늘 마라톤 10km를 뛰었다. 아니 휠체어를 밀었다.


코로나 전부터 마라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 휠체어로 산책도 잘 안 다니던 때라 5km도 겁이 나서 신청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3월 서울국제마라톤 코스가 집 앞을 지나서 사람들이 뛰는 걸 보게 된 거다. 코스 상 30km 이상 뛴 상태였기에 다들 지쳐 보였지만 정말 멋졌다. 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남편에게 하루 종일 그 얘길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여의도벚꽃마라톤 5km(4/23), 서울하프마라톤 10km(4/30)을 신청했다. 성수동에 온 후 서울숲과 한강변, 동네 산책을 자주 다녀서 5km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0km도 힘들지만 할 수 있지 않을까? 안 되면 택시 타지 뭐, 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오늘. 목표 달성!


오늘 1년간 들을 화이팅은 다 들었다. 휠체어 탄 채로 힘들게 초반 오르막 코스를 올라가던 내게 정말 많은 분들이 화이팅을 외쳐주셨다. 6-7km쯤 고비가 왔을 때 이 10km를 뛰어내는 게 12번째 오늘을 기념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고 끝까지 뛰면 스스로가 정말 대견할 것 같다고, 계속 "할 수 있다"를 되뇌었다. 남편도 내가 지쳐보였는지 우리 집 구호인 "이원지, 진성광, 원지네, 화이팅"을 계속 외쳐주었다. 8km 넘어서는 아빠 손을 잡고 뛰어가던 어린 친구, 유모차 끌고 달리던 아버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화이팅을 외쳐주었다 (그 아버님, 위 사진에도 같이 나오셨다 ㅎㅎ). 마지막에는 목표로 했던 시간이 다가와서 얼마 안 남은 에너지로 막판 스퍼트를 냈다. Finish 라인을 넘어서고 순간 나도 모르게 나 해냈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파워에이드를 나눠주시던 분도 같이 소리를 질러주셨다. 그 때 감정은 잊지 못 할 것 같다. 


대단한 기록은 아니지만 목표로 했던 1시간 20분 안에 완주해서 정말 기쁘다. Runner's high라고 하던가. 한동안은 이 힘으로 어떤 어려움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작년보다 더 기쁘고 화이팅 넘치는 기념일이었는데, 내년에는 또 어떤 일이 있을까. 나를 믿고 하나씩 더 시도해보는 날들을 보내야지. 올해도 고생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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