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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

소설글방 5 자유

by 원지윤

토요일 아침 일곱 시, 정민은 노트북 앞에 앉았다. 딸깍딸깍. 스읍.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가 거실 전체에 울렸다. 거실에는 블랙 소파와 블랙 수납장 말고는 없었다. TV 옆에 놓인 디퓨저마저도 블랙이었고 정확히 오른쪽으로 45도 틀어져 놓여있었다. 거실 창밖으로는 새하얀 눈발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어젯밤 지영과 함께 마신 샴페인 병과 잔이 놓여있는 하얀 세라믹 식탁에 앉아 거실을 바라보니 검은 거실과 새하얀 눈이 한 장의 흑백 사진처럼 보였다. 정민은 어젯밤 일이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자기야, 결혼하자. 우리.”


침대에서 지영이 말했다. 정민은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말에 불쑥 올라온, 불편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정민은 지영을 끌어안았다.


정민이 결혼 앞에서 흔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수연과 정민은 5년을 함께 지냈고 서른을 넘겼다. 서른을 넘기고 한 두 해가 지나고부터 수연의 부모님은 둘의 결혼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사치라며 연애만 하기로 하고 시작한 둘이었는데 수연은 흔들렸고 자신이 결혼을 한다면 정민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말로 회피하기만 했던 정민은 결국 수연을 놓아주기로 했다. 결혼이라는 말 앞에 정민에게 사랑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던 수연과의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사실 정민은 수연에 대한 확신보다 결혼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정민이 아홉 살 때 정민과 어머니를 두고 집을 나가 바로 옆 동네에 새살림을 차려버린 아버지를 그는 용서할 수 없었다. 정민에게 가정을 이룬다는 건 그런 아버지를 용서하는 일만큼이나 껄끄럽고 역겨운 일이었다. 정민의 마음 저편에는 자신도 아버지처럼 무책임한 사람이 될까 두려운 마음 또한 도사리고 있었다. 그렇게 뜨겁고 영원할 것 같았던 수연과의 사랑은 결혼 앞에 재가 되어 날아갔고, 정민은 수연을 떠나보냈다.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그녀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또 그녀를 닮은 딸을 낳는 동안 정민은 모아 놓은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아 몇 달 전 카페를 차렸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매일 정민의 카페에 오던 지영과는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해졌다. 스냅사진 작가인 정민은 촬영 스케쥴이 있을 때 말고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정민에게 지영은 자꾸만 셔터를 누르고 싶게 만드는 손님이었다. 카페 홍보 사진을 찍는 척하며 지영의 모습을 찍었던 순간 정민은 스스로 몰카범이라도 된 듯 화들짝 놀랐고 그 마음이 불편해 지영의 사진을 얼른 지웠다. 그렇게 정민의 마음에 지영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 정민과 지영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SNS로 알게 된 인기 작가의 글쓰기 첫 수업 시간이었다. 정민은 평소 사진을 찍으면서 밑에 몇 줄씩 썼던 글귀들이 인기를 끌면서 제대로 된 글쓰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신청했다. 첫 시간은 글감을 찾기 위해 작가님이 던져주시는 질문에 대한 답을 쓰는 시간을 보냈다. 정민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마지막 질문에 열심히 두드리던 키보드 소리가 거실의 검은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물음표 뒤에 깜빡이는 커서는 멈출 줄 몰랐다.


사랑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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