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족이 되기까지

by 원지윤

스물여섯, 나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늘 행복하겠다는 확신 때문은 아니었다.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서러워 포기하고 싶은 인생일지라도 이 사람만 곁에 있다면 견딜 수 있겠다싶어 선택한 결혼이었다. 지혜롭고 단단한 고목나무 같은 나의 반쪽은 아이 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우리가 가지지 않을 수는 있어도, 가질 수는 없어."


맞는 말이었다. 피임을 할 순 있지만 임신을 우리가 조절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산전검사를 했고 필요한 예방주사까지 맞고 언젠가 부모가 될 그날을 조용히 준비했다. 아이는 자기만의 적당한 때에 찾아올거라 믿으며 서로에게 집중하며 지냈다.


신혼 6개월차, 예상보다 빨리 아이가 찾아왔다. 기쁨 반 어리둥절 반 ㅡ 만감이 교차했다. 엄마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데 괜찮을까,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닥치면 해내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그 열달동안 나는 열심히 자고 먹고 걷고 아이를 품으며 지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열아홉 시간의 진통 끝에 건강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를 키우며 생명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사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글로만, 말로만, 머리로만 이해하던 타인을 온 마음으로, 뼛속까지, 내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 식구의 시간을 통과하며 가족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천천히 배워 갔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누군가를 책임지고, 기다려 주고, 때로는 나보다 더 앞자리에 그를 두는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익혀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나며 우리 삶의 기준과 선택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졌다. 무엇을 갖느냐보다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해졌고, 한 생명의 삶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질문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생명을 집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2023년 여름, 남편의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우리 가족은 두 달 안에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 무엇이든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오랜 시간을 쌓아가는 성향인지라, 8년 중 5년이라는 시간을 한 집에서 자라온 아이를 데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변화는 또 다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 믿었다.


일곱살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자며 조르던 아이에게 우리는 늘 마당있는 집에 가면 강아지를 키울 수 있다고 말해왔다. 제주로 이사 오며 그 약속을 예상보다 빨리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생명을 물건처럼 돈으로 사고 파는 일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소유가 아닌 공존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9월 9일. 동물행동권 카라에서 구조한 보령 번식장 아이들의 입양파티가 열렸다. 우리는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 대해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기에 새끼 강아지를 염두에 두고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어떤 한 아이에게 찜콩당한 우리 아이. 둘이 부둥켜 안고 있던 장면이 아직도 선하다.


봉사자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아이는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보령 번식장에서 새끼를 낳던 어미견이었고, 나이는 네 살정도로 추정된다고 했다. 카라에서 지어 준 이름은 '빠띠'였다.


다른 아기 강아지들도 보았다. 그러나 다른 강아지들을 볼수록, 우리 아이의 마음은 자신을 먼저 안아 준 그 어미견에게로 기울어 가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빠띠를 데려오자고 했다. 그리고 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지어준 이름, 하봄.

'하하하, 봄이와요!'

앞으로는 봄처럼 따듯하고 좋은 날들만 보내자는 뜻이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