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봄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들

by 원지윤

2023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카페 매니저로 일하던 시기였고, 그날도 여느 때처럼 매장 안 비품을 채우고 있었다. 컵을 옮기고, 빨대를 정리하고, 늘 하던 일의 반복 속에 있던 오후였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031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였다. 평소라면 받지 않았을 번호였다. 모르는 번호는 대부분 광고 전화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전화를 받자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9일에 다녀 온 동물행동권 카라 선생님이었다.


"안녕하세요. 빠띠(카라에서 부르던 이름) 입양 신청이 승인되었습니다."


합격이라는 말이 맞을지, 선정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다만 그 한 문장은 분명했다. 우리가 신중하게 고민하고, 오래 이야기하고, 조심스럽게 내렸던 선택이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쁨보다 책임이 먼저 였다. 준비해야 할 건 없다고 하셨다. 필요한 용품들과 함께 약속한 날짜에 데려다 주신다고 했다.


하봄이는 번식장에서 구조된 어미견이었다. 새끼를 낳는 역할로만 존재했던 시간들, 사람의 손길이 늘 위협이었던 기억들. 우리는 그 모든 시간을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2023년 9월 22일 금요일 오후 5시. 하봄이가 우리집에 왔다. 하봄이에게 그날은 또 한 번의 이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집,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냄새와 소리들. 기대보다 두려움이 먼저였을 가능성이 더 컸다. 캔넬에서 나온 하봄이는 조금 지쳐 보였다. 이동하는 내내 멀미를 했는지, 입 주변에는 침이 잔뜩 묻어 있었다. 긴장한 몸으로 한 번도 편히 앉지 못한 것 같았다. 카라 선생님은 하봄이를 먼저 내려놓고, 집 안을 둘러보셨다. 하봄이가 지내게 될 환경을 하나하나 확인하듯 살폈다. 선생님이 집으로 직접 데려다 주는 이유는 혹시 다른 목적을 가진 입양은 아닌지, 정말 반려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인 듯 했다.


카라 선생님은 애견용품이 담긴 가방을 함께 가져오셨다. 사료와 리드줄, 방석과 몇 가지 생활용품들. 후원받은 물품들이라고 하셨다. 입양축하선물꾸러미였다. 여러가지 용품들을 구경한 후,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안내를 해주셨다. '책임 입양비'라는 이름의 비용이었고, 그 자리에서 이체를 했다. 그 돈은 하봄의 값이 아니었다. 입양이 충동이나 연민으로 끝나지 않도록, 이 선택이 끝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약속 같은 것이었다. 휴대폰으로 이체를 하며 문득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한 생명을 데려오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감당하겠다고 말하고 있다는 생각.


하봄이는 그 모든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거실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멀미로 침을 흘린 채로, 사람들의 말을 알아 듣지는 못했겠지만, 공기가 바뀌고 있다는건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카라 선생님은 가장 염려되는건 잃어버리는 사고라고 했다. 낯선 환경에서 도망치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고, 그래서 처음 일주일은 실내 배변때문에 어렵더라도 산책을 하지 말라고 했다. 주인을 인식시키는것도 있지만 이곳이 안전한 곳이라는 걸 먼저 알게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선생님이 떠난 뒤, 하봄이는 소파 팔걸이에 올라 앉았다. 고개를 꼿꼿이 든채, 조금의 미동도 없이 밤을 지새웠다. 마치 잠을 자는 법도, 쉬어도 되는 순간도, 아직은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날 우리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많이 배웠다. 다가가지 않는 것이 배려가 될 수 있다는 것,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서 기다리는 일이 사랑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보호자가 된다는 건 앞에 서는 일이 아니라, 뒤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켜 주는 역할이라는 것을. 하봄이는 그렇게, 우리집에 온 첫날부터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