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티슈가 흘러간 뒤

편리함의 비용이 '공공'으로 번역되는 순간

by 원지윤

물티슈는 물에 젖은 종이가 아니다. 대부분은 플라스틱 합성섬유로 만든 일회용 제품이다. 손에서 잘 찢어지지 않도록, 젖어도 형태가 유지되도록 설계된 그 장점이 하수관에서는 단점으로 바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물티슈는 쓰레기통에서 끝나지 않는다. 변기로 들어가면 하수관과 펌프, 정화시설의 유지관리 문제로 번역된다. 잘 풀리지 않은 섬유가 기름때와 엉키면서 덩어리가 되고, 그 덩어리가 막힘과 고장을 만든다. 이른바 '팻버그(fatberg)'가 되는 구조다.


여기서 정책의 언어는 한 단계 더 내려간다. 이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하수관이 막히면 출동 인력과 장비가 필요하고, 설비가 고장 나면 수리·교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비용은 한 사람에게 청구되지 않는다. 공공요금과 예산으로 분산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물티슈가 하수처리 과정에서 큰 비중의 이물질·덩어리를 만들고 유지관리 부담을 키운다는 분석이 공개됐다. 그래서 물티슈 문제는 흔히 '배출 매너'로만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비용 구조의 문제다. 시장에서 팔릴 때의 가격표에는 하수관 유지관리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생산자는 판매로 이익을 얻고, 처리·수습 비용은 사회가 나눠 부담하는 형태가 되기 쉽다. 편리함의 비용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외부화되는 장면이다.


영국(잉글랜드)은 이 문제를 캠페인으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플라스틱이 들어간 물티슈의 판매·공급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했고, 전환기간을 거쳐 2027년 봄부터 시행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언젠가 금지’가 아니라 시행 시점과 범위를 문장으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의료·위생 등 필요한 영역에서의 예외를 어떻게 둘 것인지도 함께 설계하는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디테일이다. 편리함을 단번에 끊어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하나다. 필요한 편리함은 남기되, 불필요한 사용을 줄이고, 비용의 책임을 다시 정렬하는 일이다.


반면 한국은 구조가 다르게 짜여 있다. 개인 위생용 물티슈는 '인체 세정용 화장품'으로 분류되어 관리되는 흐름이 이어져 왔다. 이 분류가 안전관리(성분·유통·표시)에는 의미가 있지만, 자원순환·하수 인프라 비용과 직접 연결되는 규제 체계에서는 공백이 생기기 쉽다. '변기에 버리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반복되는 동안, 왜 이런 제품이 계속 ‘흘려보내도 되는 것처럼’ 유통되는지,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흐려진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한 생활수칙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버리는 방법의 캠페인만으로는 부족하다. 만드는 단계에서부터의 규제 패키지가 필요하다. 표시·광고 기준을 명확히 하고, 플라스틱 함유 여부가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하수관에 들어갔을 때의 비용'을 생산 단계의 책임과 연결해야 한다. 물티슈가 해양 쓰레기이기 전에 하수 인프라의 장애물이라는 사실이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제품이 만든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있는가. 규제의 강도보다 중요한 것은 비용 신호의 설계다.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으로, 사회에는 유지관리 비용으로 전가되는 구조를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책임의 위치를 다시 배치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GREEN LOG DAILY는 이 논쟁을 '물티슈를 쓰지 말자'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금지냐 권고냐의 구호로 가면, 문제는 다시 개인의 도덕으로 축소된다. 기록해야 하는 것은 정책 신호의 품질이다. 물티슈는 변기 아래로 내려가면서, 사회의 비용으로 떠오른다. 편리함을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편리함의 비용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그 비용을 누가 내고 있는지부터 정확히 보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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