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이 줄어든 게 아니라, 세계가 늘어난 날들
부모를 10년만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누가 정한 기간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나는 그 문장을 실감한다. 아이가 부모를 덜 좋아하게 된다는 뜻이라기 보다 부모 말고 좋아할 세계가 생긴다는 뜻. 엄마아빠가 유일한 재미가 아니게 되는 것. 그게 성장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종종 늦게 알아듣는다.
이제 열 한살의 아이는 확실히 엄마아빠보다 재밌고 좋은 게 생겨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현실적인 아이였던지라, 그렇게 서운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서운한 건 서운한 거다. 다섯 살때쯤 엄마랑 결혼할 거라던 아이가 물었다.
“근데 내가 아빠처럼 크면 엄마도 할머니처럼 돼?”
"그럼~!!"
내 대답을 듣자마자, “그럼 엄마랑 결혼 안 해.” 다섯 살의 논리, 이상하게 완벽해서 더 서운했다. 사랑이 철회되는 방식이 이렇게 귀엽고 단호할 수 있다니.
요즘은 아빠랑 한창 까르르 웃으며 놀다가도, 친구가 놀러 오거나 밖에서 "놀자" 한마디가 떨어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간다. 그 순간이 이상하게 선명하다. 방금 전까지 내 앞에서 반짝이던 아이가, 문턱을 넘는 순간 다른 리듬으로 달려간다. 나는 그걸 “아이가 나를 덜 좋아하게 됐다”라고 해석하고 싶지 않다. 사실은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좋아할 수 있는 세계가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그 늘어난 세계에, 엄마가 늘 같이 포함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사랑이 늘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엄마가 제일이고, 집이 제일이고, 잠은 무조건 엄마 옆이었으니까. 엄마랑 결혼이 철회되어도, 최소한 잠은 같이 잤다. 결혼은 안 해도 동맹은 유지되는 줄 알았다. 밤은 늘 내 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이가 아주 담담하게 선언했다.
"나 이제 코코랑 잘래."
코코는 아무것도 모른 채 꼬리를 흔들었고, 아이는 그게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웃어야 할지 서운해야 할지 잠깐 헷갈렸다. 아이의 독립이 이렇게 귀엽고 이렇게 잔인할 수 있구나. 엄마를 밀어내는 방식이 ‘문을 쾅’이 아니라 ‘코코 끌어안기’라니. 아이는 엄마를 떠나는 순간에도 꼭 부드러운 쪽을 고른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간질거린다. 아픈데 예쁘고, 예쁜데 서운한 그런 감정.
요즘은 점점 내 품을 떠나갈 날들만 남은 것 같아서, 혼자 빈둥지증후군을 연습 중이다. 아직 둥지는 비지 않았는데, 마음이 먼저 비어 보이는 날이 있다. 아이가 멀어지는 게 아니라, 아이의 세계가 넓어지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자꾸 내 자리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낀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아이의 '뒤도 안 돌아봄'을 배신으로 읽지 않기로. 내 품을 떠나는 걸 성장으로 번역하기로. 그리고 빈둥지증후군을 혼자 앞당겨 겪지 않기로. 아이가 나를 덜 찾는 만큼, 내가 나를 더 찾는 연습을 하자. 떠나는 걸 막는 사랑 말고, 떠나도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을 하자.
가라, 잘 가라. 쿨한 엄마가 되자.
... 근데 잠깐만. 그럼 엄마는 어디에 눕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