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때는 조용히 도착한다.
아이를 키우며 자주 깨닫는다.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실수는, 아이의 시간을 내 불안으로 앞당기는 것이다. ‘지금쯤은 해야 한다’는 기준이 사실은 아이의 필요가 아니라 내 불안의 언어였다는 걸, 나는 늦게 알아차렸다. \
그래서 요즘의 나는, 아이를 재촉하는 대신 나를 붙잡는 법을 연습한다. 재촉하지 않는 용기. 아이의 때를 기다리는 용기. 기다린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할 일을 더 정확히 아는 태도에 가깝다. 아이를 몰아붙이는 대신, 아이가 움직일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는 것. 말로 끌어가기보다, 필요하면 도와주되 결정은 아이에게 돌려주는 것. 나는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얼마 전, 그 용기가 작은 형태로 확인된 날이 있었다. 나는 요즘 아이의 공부를 관리하고 싶을 때가 많다. 성적이 아니라 습관이 걱정되고, 습관이 아니라 태도가 걱정되니까. 그러다 보면 말은 금세 커진다. “이제 해야지.”, “계획 세워야지.” 그 말들이 결국 누구를 위한 말인지, 나는 너무 잘 안다. 아이를 위한 척하지만 사실은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한 말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번에는 말을 아꼈다. 더 정확히는, 말을 조절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고, 필요한 말만 남겼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그리고 기다렸다. 아이가 스스로 필요를 느끼는 시간을, 아이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 문제집 사야겠어.”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공부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문제집’보다 먼저 들린 건, ‘내가 해볼게’였다. 아이가 처음으로 스스로 필요를 말로 꺼낸 순간이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반가워서, 기특하다고 크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런 순간은 크게 칭찬하면 금세 ‘엄마가 원하는 일’이 되어버리기 쉽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담담하게 물었다. “어떤 게 필요해?” 아이의 마음이 움직인 방향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날 나는 다시 배웠다. 시켜서 하는 건 버티기지만, 스스로 정한 건 시작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이의 시작은 늘 소란스럽지 않다는 것을. 조용히, 자기 안에서 차오르고, 그러다 어느 날 문장 하나로 밖에 나온다는 것을. 재촉하지 않는다는 건, 아이를 놓아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더 믿는다는 뜻이다.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이 자라나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불안을 아이의 등에 올려두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조급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아이의 필요인가, 내 불안인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 걸음 늦출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속도를 망치지 않는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재촉하지 않는 용기는 결국, 아이를 믿는 용기이고, 동시에 나를 믿는 용기다. 아이가 스스로 말하는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도착한 것이라고. 아이의 때는 오고, 그때 나는 곁에 있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