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기르려고 시작한 육아(育我), 나를 기르다

비로소 엄마가 되어서야 나를 마주했다

by 원지윤

올해로 11년 차. 완벽해야 안심할 수 있고, 불안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나의 성향은 육아와 가장 잘 맞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렇다고 육아를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는 매일 자라는데, 나는 매일 나를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했다. 긴장을 풀어내는 방법을 찾아 헤맸고, ‘나만 잘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하루를 버텼다. 엄마의 정서가 아이에게 건너간다는 말을 나는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아마, 내가 그렇게 건너온 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자꾸 불안에 잠식될 때면, 남편은 나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주는 말을 건네곤 했다.


“여보, 우리 아기는 여보랑 달라. 똑같을 거라 생각하지 말자. 무엇보다 내가 있잖아.”


나의 어린 시절은 서글펐다. 태어난 지 백일이 되었을 때, 아빠는 쓰러졌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고 3년의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사실 그 나이의 아이에게 아빠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그리움이나 부재로 인한 불편함은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대신 나는, 아빠가 없는 — 더 정확히는 남편이 없는 — 자신의 처지를 서글퍼하던 엄마의 정서를 그대로 품고 자랐다.


엄마는 마치 이미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 아니, 곧 죽을 사람처럼 살았다. 우리가 다 커서 더 이상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엄마도 아빠처럼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에 휩싸여 있던 나는, 그런 아이였다.


이런 원초적인 불안을 지닌 나를 보며, 남편은 어느 날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여보는 세상의 비밀을 너무 일찍 알아버려서 힘들었을지도 몰라.”

“어떤 비밀?”

“태어난 지 백일 만에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 우리도 아기를 키우지만, 아기들은 말은 못 해도 다 알아듣고 있잖아.”


그날 나는 남편의 품에 안겨,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날, 나는 백일부터 다시 자라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사랑했던 아빠를 잃었던 무의식에 박힌 불안은 아이를 키울 때도 발동되었다. 잠든 아기를 보며 혹시 죽은 건 아닐지, 손가락을 코에 대고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이는지를 반복해서 확인했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남편은 괜찮다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여보, 나 믿지? 내가 선택한 사람이 여보야. 여보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고, 좋은 엄마야.”


그런 날들이 삼천여 일. 이제는 불안하지 않다. 아니, 불안해도 금방 안정을 찾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무엇보다 남편을 믿고 시작한 육아(育我)를 통해, 나는 나를 믿게 되었다. 그러니 아이도 저절로 믿어진다. 나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납득시키거나 이해를 바라며 살지 않는다. 그저 내가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 떳떳한 삶을 살기 위해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열 손가락을 넘어서는 나이가 된 아이에게 그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내 삶을 잘 살아가는 모습을.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