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걱정을 내가 처리해온 시간
1월이 되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가 1월 말에 가족여행으로 일본을 가는데, 그 전에 엄마도 바람 좀 쐴 겸 제주에 내려오겠다는 얘기였다. 엄마의 말은 휴가였지만, 내가 듣기엔 늘 그랬다. 엄마의 휴가는 언제나 아들 근처로 이동하는 일이었다. 아들의 일정이 엄마의 달력에 먼저 적히고, 엄마의 감정은 그 칸을 따라 흘렀다.
그런데 우리에게 변수가 생겼다. 코코. 강아지 한 마리 더.
엄마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엄마가 강아지를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개새끼를 왜 먹여 살리냐는 쪽이다. 엄마의 세계에서 강아지는 가족이 아니라 비용이고, 귀여움은 사치다.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우리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더 생겼어.”
들떠 있던 엄마의 목소리가 맥주잔 위에 올라온 거품처럼 순식간에 꺼졌다. 나는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 말이 없어도, 멈칫하는 숨만으로도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방식. 엄마는 그걸 잘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너무 오래 배워왔다. 엄마가 불편해하면 내가 먼저 작아지는 일. 설명하고, 변명하고, 설득하려는 내가 먼저 나오는 일.
그때 떠오른 건 코코가 아니라 흰둥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집은 3층 빌라의 1층이었다. 앞쪽 마당에 시고르자브종 한 마리를 묶어 키웠다. 엄마는 아마 방범용으로 들였을 것이다. 집 안에 들이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아이는 늘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엄마도 오빠도 없는 집에서, 내가 “다녀왔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흰둥이뿐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흰둥이는 없었다. 목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다급하게 전화했다. 엄마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누가 가져갔나 보지.”
그땐 누가 너무 예뻐서 훔쳐갔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큰외삼촌이 잡아먹은 것 같기도 하다. 후. 확실한 건 하나다. 엄마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붙잡고 있던 끈을, 나와 상의하지 않고 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방식은 항상 일방적이었다.
엄마가 제주에 온다는 얘기는 결국 흐지부지됐다. 마침 그 시기에 부부동반 여행이 잡혀서 못 오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잘됐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다만, 엄마가 우리 집에 오는 순간부터 시작될 것을 너무 잘 안다. 엄마의 불편함을 내가 눈치 보고, 엄마의 감정에 맞춰 집의 공기가 재배치되고, 결국에는 오빠가 그 공기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걸.
그렇게 1월 한 달. 각자 삶에 집중했다. 아이는 방학이고, 매일이 돌밥돌밥,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가 슬럼프가 왔다는 소식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오빠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위로나 대화로 풀어주라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오늘도 내 안부는 인사일 뿐이라는 걸.
전화의 본론은 늘 오빠였다는 걸.
엄마가 혼자 오빠의 슬럼프를 보고 있기 고통스러우니, 내가 좀 나눠 가지라는 뜻이라는 걸.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힘들어할 때, 엄마는 오빠에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있을까.
“너도 동생 좀 위로해.”
“너도 전화 좀 해.”
그런데 나는 묻지 않았다. 부질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의 감정은 오빠의 기분을 따라가고, 그 감정의 배출구는 늘 나였다. 나는 오래 전부터—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반쯤 자동으로 맡아왔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엄마가 아들을 놓지 못하는 걸, 나는 이해하려 애써왔다. 사랑이라 믿고 싶었다. 걱정이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랑과 걱정이 한 아이에게만 집중될 때, 다른 자식은 늘 조용히 정리되는 쪽이 된다. 참고, 맞추고, 알아서 비켜서는 쪽이 된다.
아들을 놓지 못하는 엄마를 볼 때, 나는 슬퍼진다. 엄마의 손이 너무 꽉 쥐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손에서 빠져나온 것들이 늘 내 쪽으로 굴러오기 때문이다. 엄마가 놓지 못한 아들의 무게를, 왜 내가 대신 들어야 하는지.
나는 이제 그 질문을—나에게만 조용히 묻는 일을—멈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