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긋기 : 나는 더 이상 엄마 호적에 없다

노후의 저울이 우리 집으로 기울 때

by 원지윤

육지에 살 때, 엄마의 저울질에 진절머리가 났다. 엄마는 자신의 노후, 자신의 노년을 어느 자식에게 기대고 맡겨야 하는가를 초단위로 저울질했다. 말로는 너희한테 기대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눈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자식이 오빠와 나뿐이니 선택지도 둘뿐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계산은 더 단순했고, 더 노골적이었다. 어느 자식 집에 둥지를 틀까, 어느 방이 내 자리가 될까, 누구의 손을 잡고 병원에 다닐까, 누구의 냉장고를 열고 "반찬 좀"을 말할까. 그런 장면을 혼자 시뮬레이션해보는 게 눈에 보였다.


사람은 보이는 게 많아지면 참 괴롭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보인다고 해서 다 아는 척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숨길 생각이 없었다. 숨기지 않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나는 엄마를 보며 배웠다. 사랑이나 미안함 같은 감정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 생존의 계획이 내 앞에서 계속 펼쳐졌다.


아무래도 아들은 며느리가 있으니 엄마도 부담스러운 듯했다. 오빠 집은 이미 완성된 가정 같았고, 그 안에는 며느리의 규칙과 공기가 있었다. 엄마는 그 공기 속에 오래 머무는 걸 불편해했다. 그럴수록 엄마의 저울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기울었다. 엄마는 “며느리보다는 딸이지”라는 말을 아주 쉽게 꺼냈다. 말끝에는 늘 정답처럼 붙는 단서가 있었다. 딸은, 더 편하니까. 딸은, 더 챙기니까. 딸은, 결국 하니까. 그런데 그 말이 내게는 선언처럼 들렸다. 너는 할 거다. 너는 맡을 거다. 너는 받아줄 거다.


엄마는 어린 사위를 더 편안해하는 것 같았다. 사위는 엄마에게 예의를 갖추었고, 엄마는 그 예의 안에서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 듯했다. 사위 앞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표정을 정리하고, 괜찮은 어른의 얼굴을 했다. 나는 그 얼굴이 낯설었다. 내가 어리고 약할 때, 엄마는 그런 얼굴을 내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요즘말로 나는 엄마의 노후를 책임질 의사가 1도 없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엄마를 책임질 준비를 해본 적이 없었다.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아홉 살의 나에게—그리고 그 전에도 수도 없이 힘이 약하고 의지해야 할 나이에—엄마는 아빠의 투병을 핑계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핑계로 나를 떼어놓고 가버렸다. 그때의 엄마는 뒤도 안 돌아봤다. 떠나는 사람은 늘 이유가 많고, 남겨지는 사람은 이유가 없다. 그냥 남겨진다. 나는 그 남겨짐을 너무 오래 살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나도 엄마가 힘없고 약해졌을 때, 엄마가 뒤도 안 돌아보고 매몰차게 갔던 그대로 나도 그렇게 할 거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아홉 살의 나를 대신해서 엄마에게 한 번은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 그게 정의인지, 잔인함인지, 그런 건 그때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더 이상 당하는 쪽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자꾸 우리 집에 둥지를 트려고 했다. 서재로 꾸밀 방에 자신의 옷과 소품들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잠깐 둘 데가 없어서”였다. 다음엔 “이거 너희 집이 더 안전할 것 같아서”였다. 그다음엔 “어차피 자주 올 거니까”였다. 이유는 점점 짧아지고, 물건은 점점 늘었다. 옷걸이가 하나 걸리고, 서랍 한 칸이 비어야 했고, 화장대 위에 엄마의 화장품이 놓였다. 방의 공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내가 계획했던 서재의 공기가 아니라, 엄마가 살던 집의 공기였다. 그 공기가 내 폐에 들어오는 순간 숨이 막혔다.


그리고 한 달에 두세 번은 오면서 그렇게 했다. 올 때마다 무언가를 들고 왔다. 옷 한 벌, 스카프 하나, 오래된 소품 몇 개. “이거 어디 둘까?”라는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엄마의 질문은 늘 결정처럼 떨어졌다. 나는 버렸다. 내 것인 줄 알고 버렸다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비겁한 변명인지도 알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했다. 내 속에서 무언가가 ‘그냥’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우리 집에 여지를 두는 게 싫었다. 여지는 곧 ‘역할’의 자리였다. 물건을 놓는 순간 사람도 눌러앉는다. 눌러앉는 순간 기대가 시작된다. 기대가 시작되면 당연해진다. 당연해지면 나의 시간과 몸은 조금씩 엄마 쪽으로 기울어진다. 나는 그 기울어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물건이 놓이는 순간부터 막고 싶었다. 그 방을 서재로 꾸미는 건 단지 취미가 아니라, 내 삶의 경계를 정하는 일이었다.


양심도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내가 어리고 약할 때 무참히 잘도 버리고 갔으면서, 왜 이제 와서 이러는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그렇게 쉽게 떠났으면서, 이제 와서 살맞대고 살려고 하는 게 너무도 싫었다. 엄마의 살이 내 삶에 닿는 게 싫었다. 엄마의 온기가 내 집안에 번지는 게 싫었다. 엄마가 ‘우리 집’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는 게 싫었다. 말 한마디가 집의 소유권을 흔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짜증을 냈다. 이유 없는 짜증과 분노를 쏟아냈다. 아이 앞에서 보이기 부끄러웠지만 참을 수 없었다. 아이가 엄마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순간, 내 안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더 잔인했다. 나는 “왜 그래?”라는 남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더 초라해졌다. 그래도 멈추지 못했다. 엄마가 웃으며 “우리 손주”라고 말할 때마다, 내 안의 아홉 살이 “나는?”이라고 물었다. 그 질문이 내 목구멍을 눌렀다.


숨이 막혔고 살의를 느꼈다.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랬다. 살의는 어떤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번쩍 올라오는 마음이었다. 그냥,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 여기서, 지금, 나의 집에서, 나의 숨에서, 엄마가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 내가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놀라게 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잔인해지는 쪽이 덜 아픈 것 같았다. 아픈 쪽에 오래 머무는 대신, 날카로운 쪽으로 옮겨 타는 느낌이었다.


살의를 통해서 나의 상처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덮이는 줄 알았다. 덮이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상처는 덮여도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그 위에 손을 얹으면, 한 번도 치유된 적 없는 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엄마가 내 집에 둥지를 틀려는 순간마다, 나는 매번 그 상처 위에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 반응은 ‘지금’의 일이 아니라 ‘그때’의 일이었다.


엄마는 “너무하네”라고 했다. 나는 “너무한 건 엄마였지”라고 말하지 못했다. 말하는 순간, 내가 아홉 살로 돌아갈 것 같아서였다. 나는 어른의 얼굴을 하고 싶었다. 아이 앞에서는 더더욱. 그런데 어른의 얼굴은 내게 너무 비싼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만들기 위해 내 마음을 너무 많이 억눌러야 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선을 그었다. 물건을 버리는 방식으로, 짜증을 내는 방식으로, 날카롭게 말하는 방식으로. 올바른 방식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선을 긋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 집에 남겨두려는 여지를 싫어했던 건, 단지 공간 때문이 아니었다. 그 여지가 내 삶 전체로 번질까 봐, 내가 다시 ‘버려지는 쪽’으로 밀려날까 봐 두려웠다.


나는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아주 늦었지만, 그래도.


선 긋기. 나는 더이상 엄마 호적에 없다.


그 말은 행정의 말이 아니라, 마음의 말이었다. 엄마의 계획 속 자리가 아니라, 내 삶의 자리에서. 더 이상 엄마의 노후 시뮬레이션 안에서 내가 ‘가능한 선택지’로 남지 않도록. 누군가의 둥지가 아니라, 내 숨이 먼저인 집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그 선을 다시 긋는다. 매번 조금씩 흔들리면서도, 지우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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