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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이머문자리 Apr 21. 2023

내가 가장 궁금했던 트릿지, 그린랩스

두 회사가 합병하면 대단한 걸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삼성물산 상사부문에서 13년 넘게 수출입 영업을 했다.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트릿지, 그린랩스를 알게 되었다. 삼성물산 후배들이 투자도 검토하는 것을 알았을 때, 트릿지를 인수하면 어떠냐고도 얘기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몸값이 너무 높아져서 생각도 안 하고 있을 때였다.


트릿지, 그린랩스 둘 다 데이터로 농업을 혁신한다는 방향성이 일치했고, 트릿지의 데이터로 수요, 공급 상황을 알 수 있다면, 그린랩스의 스마트팜을 세계 각지에 지어두고 트릿지의 데이터에 맞춰서 농산물을 키우고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두 회사의 실적보다는 실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재무제표를 자세히 봐야지라는 생각은 없었는데, 올해 두 회사가 재무제표가 모두 공개돼서 한 번 살펴봤다.


우선 트릿지는 기업가치 3.6조라고 하고 있고, 그린랩스는 작년 초 8천억이었다. 그래서 두 회사 모두 유니콘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재무제표만 보고서는 1~2천억짜리 회사인가 싶은 느낌도 들었다. 재무제표만으로는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은 회사들이었다.



특히 나는 트릿지가 궁금한데, 정말로 농업 관련 데이터를 어떤 형태로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내가 삼성물산을 근무할 때, 옆에서 쌀을 인도에 수출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골머리를 썩었던 후배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쌀'이라는 하나의 품목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국제 거래에 있어서 쌀은 아래와 같은 조건들에 따라 다른 제품이 될 수 있다.


Product: IR64 5% broken

Origin: India

Specification:

Product: IR64, Parboiled, broken kernels 5% max.

1. BROKEN GRAIN (MAX.) – 05.00%

2. MOISTURE (MAX.) – 14.00%

3. FOREIGN GRAINS (MAX.) – 0.50%

4. YELLOW KERNELS (MAX.) – 1.50%

5. RED AND RED-STRICKED KERNELS (MAX.) – 1.00%

6. CHALKY & IMMATURE KERNEL – Nil

7. PADDY GRAINS – Nil

8. FOREIGN MATTERS – Nil

9. LENGTH – 6mm plus


길이, 색상, 파손 정도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쌀로 통칭되지만, 다른 제품이 된다. 아래 사진처럼 모두 쌀로 통칭될 수 있지만, 모두 다른 제품이라고 봐야 한다.


과연 트릿지는 이렇게 다양한 조건에 따른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그에 따른 수요, 공급이 데이터로 누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쌀뿐만 아니라, 다른 농수산물도 상품화될 때는 굉장히 세분화될 수밖에 없으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니어 보이기에 더욱 궁금하다.


농산품별로 매우 세부적인 데이터와 그에 따른 경작 가능 조건을 연구해서 해당 제품(농산품)이 그린랩스의 스마트팜에서 생산될 수 있는지를 보고, 수요, 공급의 불일치가 심한 지역에 스마트팜을 구축하면, 배송비도 절감되고, 가격이 비쌀 시점을 맞춰서 출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두 회사가 합병되면 시너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회사가 이야기하는 농업 데이터가 실질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재무제표에는 그러한 자산에 대한 부분은 알 수 없어 아쉽다.


트릿지의 경우 글로벌 농수산물 소싱 허브라고 하는데, 글로벌 상관례는 위의 쌀의 사례처럼 굉장히 세밀한 거래 조건을 요구해서 데이터로 매칭해 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마도 매뉴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데이터를 갖고 농업을 Digital Transformation 하겠다는 두 회사의 포부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진행됐는 지를 엿보려고 손익계산서를 요리조리 뜯어봤다.


1. 매출

TRIDGE  매출이 전부 상품매출이다. 농업 관련 데이터 자체를 외부에 판매하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데이터를 활용해서 상품 거래를 만들고 있다면 이 매출은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하게 broker로 거래 알선만 하고 수수료를 받는 형태가 아니고, 직접 매입해서 매출하는 상사업의 형태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거래 품목, 수출/수입 비중 등이 궁금하다.


greenlabs  그린랩스는 2020년부터 공시 자료가 있어서 3개년치를 봤다. 매우 드라마틱하게 스마트팜에서 상품매출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것이 보인다. 내 개인적인 추정으로는, 초기 스마트팜을 판매할 때는 세간의 관심을 받고, 구매하려는 실수요자들에게 판매가 됐을 것이나, J커브급 성장을 만들기에 수요가 탄탄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직접 매입해서 매출을 만들자고 방향을 잡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두 회사 모두 투자받은 돈으로 매출을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느껴지는 매출이다. 다음으로 매출원가를 보면 그런 느낌이 더욱 확실해진다.


2. 매출원가

매출원가를 보면, 당기 상품매입액이 나오는데, 2022년의 두 회사를 보면 모두 매출만큼 당기에 매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농산물은 수익률이 좀 높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2022년을 보면 상품 매출의 원가율이 TRIDGE 97.9%, greenlabs 93.7%로 팔아도 남는 게 없어 보인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greenlabs의 스마트팜 원가율이다. 2022년에는 164%로 역마진 구조이다. 2020년에 69.4%인 것은 실수요자에게 판매하면서 충분한 마진을 확보한 것일 수도 있겠다. 또는 수주 영업형태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출/매출원가를 잡다 보니, 초반에는 매출원가가 덜 잡히고 후반에 더 많이 잡혔을 수도 있겠다. 거기에 신규 수주가 줄면서 2022년에 원가율이 확 오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출 총이익률을 보면 2022년 TRIDGE 2.5%, greenlabs 1.4%로 매출로 벌어먹고 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재무제표 상의 비용, 자산 측면에서도 주목할 부분이 몇 가지 있지만, 재무제표만으로는 두 회사의 실상을 알기는 어려워 보였다. 투자유치를 하면서 보여줬던 두 회사의 Vision이 궁금한 대목이다. 이 부분은 내가 확인할 길이 없고, 확인하더라도 영업비밀에 속할 것이므로 이렇게 공공연히 쓰기는 어려울 듯하다.


분명히 두 회사가 갖고 있었을 농업의 Digital Transformation의 미래 모습이 있을 것이다. 당장의 매출보다는 그 미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만들어 가는데 더욱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매출을 만들고 있을 것이겠지만, 지금의 수익 구조로는 매출을 만드는 것이 회사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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