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다는 것이 불행은 아니다.
꿈과 열정이 강요되는 사회는 허상이다.
나는 충남 천안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수능시험에서 운 좋게 모의고사 대비 높은 점수를 받게 되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시절 모두가 그렇듯이, 인생의 목표가 '대입'이었는데, 대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이곳은 목적지가 아니었고, 경유지였음을 알았을 뿐이다.
초중고교 시절, 장래희망을 많이도 써냈지만, 장래희망은 대부분 번듯한 직업이었을 뿐, 정말로 그것이 되고자 하는 꿈을 물어봤던 사람은 없었다. 소위 말하는 모범생처럼 특별한 문제 일으키지 않고 초중고를 마쳤는데, 목적지인 줄 알았던 대학교에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적잖게 놀랐었다.
다만, 1999년 그 시절은 대학교 1, 2학년은 신나게 놀고, 군대 다녀와서 공부를 하는 류의 생활의 끝자락이었다. 그래서 술 마시며 흥청망청 보내느라 크게 방황하지는 않았었다. 제대하고 보니 세상은 변해있었는데, 대학교 1학년부터 전공 배정을 위해 아이들이 미친 듯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무한 경쟁 시대가 된 듯 보였다. 여차저차 하여 제2의 목적지인 '취직'으로 가기 위해 구멍 난 학점들을 메워 겨우 3.49/4.5를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운 좋게, 대기업에 취직하게 된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S그룹 신입 공채로 입사해서 13년 넘게 근무했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삶으로 보일 것이다. 나도 나의 과거가 성공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만족하면서 살아왔던 시절이다. 다만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는 달리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꼭 되고 싶은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요구하는 길을 잘 밟아왔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2014년이던가, 대기업을 다니던 중에 봉사활동으로 대학생 멘토링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대학생 5명 정도와 2~3차례 만나 멘토링을 진행했었다. 내가 2006년에 입사를 했으니까, 거의 10년이 지났고, 취직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내 시절보다 꿈과 이상이 높을 줄 알았다. 구글, 애플에 입사 지원하고 막 이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 학생이 '자기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취직을 해보려고 한다.'라고 답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도 그랬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서 멘토링을 하는 다섯 친구들에게, 허황된 말 같겠지만,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근 10년이 지난 2022년 11월 현재.
모든 사람들이 꿈을 가져야 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100%가 꿈을 갖고 달려간다면,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처럼 꿈은 없지만, 사회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대기업에서는 특히나 이러한 구조가 확연하다. 굉장히 우수한 직원들의 수는 많지 않지만, 평균 이상의 보편적인 사람들이 60~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13년 4개월의 대기업 생활을 마치고, 스타트업에서 3년 3개월을 보내고 나서는, 꿈 많고, 굉장히 열정적인 우수한 사람들만으로도 회사가 잘 돌아가기 어렵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0명 미만의 스타트업에서는 열정과 꿈 가득한 S급 인재로만 채워서 달려갈 수 있겠지만, 조직 구성원이 100명을 넘어가면 보편적인 사람들의 감성을 이해하고, 그런 사람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조직이 운영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스테이지 전환이 되기 쉽지 않은 구조였다. 특히나 S급 인재들은 보편적인 사람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스타트업에서의 마지막 1년 반은 투자심사역으로 있었는데, 초기 스타트업을 리드하시는 대표님들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시리즈 A, B에서 만나는 슈퍼히어로급 인재들보다, 보편적인 인재를 잘 다루는 법을 연습하세요. 보편적인 인재들은 대표님 성에 차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조직원 100명만 넘어가면 그런 직원들이 50명이 넘어갈 겁니다. 그런 직원들로도 조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초기에 준비하지 않는다면, 시리즈 C 이후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특히나, 스타트업 대표님들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표님의 마음을 위로해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꿈과 열정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가 강요하고 있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내가 스타트업에서 많은 직원들과 일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그들은 '성공'보다는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