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이머문자리 Nov 11. 2024

쫄지마!

백두대간 17차 입산. 29,30구간 저수령~죽령

이번 산행은 3가지 정도의 기억을 남겼다.


1. 보충 산행까지 생각했어~

2. 원래 그렇게 걷는 거 아닌가요? 그럼 어떻게 걷죠?

3. 쫄지마!


2024년 11월 9일(토) 저수령부터 죽령 산행기

이번 산행은 난이도에 대해서 나와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그 내용은 '3. 쫄지마'에서 말하려고 한다.



1. 보충 산행까지 생각했어~

출발하기 전에 총무대장(아내)이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고, 중간에 안전하산 하는 루트를 면밀히 숙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버스에서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총무대장의 산행은 험난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산행을 시작했는데, 촛대봉, 투구봉, 시루봉에 이르는 초반 3~4km에서 몹시 힘들어하고, 짜증이 가득했다. 물론 내가 렌턴을 조금 잘못 달았던 죄가 있기는 하다. 앞으로 신경 써야 할 것이 하나 늘었다. 그래서 나는 묘정령에서 하산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산행에 임했다.

그리고 오늘 보급대장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여서, 묘정령에서 하산하지 않으실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누가 안전 하산을 인솔할 것인가? 날씨대장님인가 나인가?를 상상하면서 갔다. 

날씨대장과 나, 둘 다 인솔을 하면, 나중에 보충하러 올 때, 운전할 사람이 없으니 한 명은 완주를 해야 된다라고 말하면서 날씨대장님을 보내고 나는 편히 내려가는 상상을 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안 통하면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까지 생각했다.

가다가 털썩 주저앉으며, 산에 화내는 총무대장. 나는 아주 논리적으로 너의 몸 상태를 보고 묘정령에서 내려갈지 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덕에 그녀의 짜증을 옴팡 받았다. 산행 초반인데, 가다가 털썩, 털썩 주저앉는 모습에, 오늘은 중간에 내려가겠구나 했다.


그런데 묘정령 못 간 솔봉에서 점심을 먹고 나더니 살아났다. 라면을 끓이는 것이 늦어지는 덕분에 점심에 조금 더 오래 쉰 덕분인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묘정령을 조금 지나면 아래의 경고문구가 나온다.

여기를 지나가는 시간이 12:39분이었다. 그리고 내 Garmin의 도착 예정시간은 5시 50분가량을 가리키고 있었다. 랜턴에 배터리 충분하고, Garmin에도 랜턴 기능이 있고, 핫팩 있고 해서 충분히 가능은 하겠다 싶었다. 총무대장도 이런 문구는 처음 본다면서도, 멈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도 가능은 하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하산 하자고 하지 않았다.


이미 보급대장님은 지나가셨고, 내가 앞서 상상했던 일들이 모두 무산되었다. 오늘 여기서 좀 쉽게 내려가나 했는데, 아쉽다고 생각했다. 이 지점을 13시까지 통과하지 못하면 입산 통제라고 되어 있어서 억지로 데리고 내려갈 수 있었는데 아쉽기도 했다.



2. 원래 그렇게 걷는 거 아닌가요? 그럼 어떻게 걷죠? 

이번 산행 초반에 경사를 올라가는데 보급 2 대장님께서 보폭을 좀 넓혀서 엉덩이 아래와 허벅지 끝부분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게 걸어야 된다고 하셨다. 무전기 대장님과 나는 그 근육에 어떻게 힘을 줘야 되는 거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폭을 넓히니, 좀 느낌이 왔는데, 런지 하듯이 가면 되다고 말씀하셔서, 이 느낌이구나 하고 그렇게 걷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신기하게도 허벅지 앞 근육을 덜 쓰게 되었다. 그래서 산행을 마친 후 다리 근육에 피로가 덜하다. 걱정했던 엉덩이 근육도 많이 당기지 않았다.


총무대장에게도 이 보법이 괜찮다고 몇 번인가 말했지만, 그녀의 뒤통수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느낌이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래 사진이 런지 자세인데, 보폭을 넓히면 자연스레 이 자세 비슷하게 경사면을 오르게 되어 딱 엉덩이 아래쪽과 허벅지 뒷 햄스트링 닿는 곳에 힘이 들어간다. 힙업까지 된다고 하니, 다음 산행에는 이렇게 걸어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다.

출처: 케티이미지뱅크, 

산행을 마치고 저녁을 먹는데, 체조대장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오늘 이런 보법을 보급 2 대장님이 알려주셔서 유용했다고 내가 말했다. 그런데 체조대장님 왈,

'원래 그렇게 걷는 거 아닌가요? 그럼 어떻게 걷는 거죠?'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하고 속으로 탄성을 내지르면서, 나만 몰랐던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체조대장님의 속도의 비밀은 이 보법이었는지도 모른다 ㅎㅎㅎ




3. 쫄지마!

산행 전 날인가, 단톡방에 아래와 같은 글이 하나 올라왔다.


이번 20기 산행 구간(저수령 ~ 죽령)이 고도표만 보면 다른 구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저희 17기 대장단 투표에서 난이도 1등을 차지한 구간입니다. 아래와 같이 가장 좋은 상황에서 갔는데도 말이죠. 아직도 왜 힘들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 44차 산행이었음 (모두 등산 전문가였는데...)

- 9월 9일 산행 (날씨도 선선하고 좋았음)

따로 준비할 게 있지는 않겠지만 20기 분들 모두 마음에 준비 정도는 하고 가시면 좋겠네요.


참고로 저희 17기 난이도 TOP 5입니다. 도연 맘빠도 궁금해 하시는거 같으니 공유해 주세요~*

- 1등 7.00점: 30구간 저수령 ~ 죽령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이 어쩌면 많은 대원들을 겁먹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 다녀온 나의 평가는 조금 달랐다. 산행을 다녀오면 나는 내 개인적인 평가를 별점으로 남겨 두는데, 아직까지는 지리산 1구간이 최고였다.

게다가 이번 산행은 나한테는 별점 3점 난이도였는데, 아마도 보급 2 대장님께서 알려주신 보법 때문 아닐까 한다. 우리 중에 최고의 physical을 보이는 체조대장님도 이번 산행이 최고로 힘들었다고 하시는 것을 보면, 확연히 어려웠던 산행인 것은 맞는 것 같다. 내 평가가 남들과 이렇게 상이한 적은 처음이었다. 

신규 보법 때문인 듯도 하고, 후미에 가면서 천천히 가서 그런 듯하기도 하다.


게다가 Garmin에 고도표가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가서 좀 더 수월하지 않나 싶다. '아는 것이 힘'이어서, 어려운 구간을 앞두고는 체력을 아끼는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더해 도착 예상시간을 알려주는데, 이것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추세를 보면, 지금 내가 가는 상태가 괜찮은지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후미에서 다른 대원과 같이 움직이면, 그 대원의 몸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지 개선되고 있는 지도 알 수 있다. 이번에 내가 무전으로 17:50분 도착 예정이라고 알리니 놀랐다고 하시는데, Garmin 덕분이다. 다행히도 총무대장의 컨디션은 계속 개선되면서, 17:43분에 산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옛날 시조에서 우리는 쫄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국어책에서 봤었으니까!!


태산가 - 양사언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헤더 사진은 시루봉에서 본 일출]


해 뜨는 것 보면서 시작해서, 해 지는 것 보면서 끝맺었다.

총무대장 잘 했다~


[Garmin 산행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