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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Feb 04. 2022

술과의 전쟁

코로   나   술 마셔봤어요. 100% 실화입니다.

 저는 술을 잘하지 못합니다.

 술을 대학교 때 처음 배웠고 친구들에게 안주발 세운다고 엄청난 타박을 견뎌내야 했죠.

 하지만 그 정도의 타박은 굉장히 애정 가득한 약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말이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4년 정도 전, 2008년 정도에 제가 두 번째로 모셨던 부장님은 정말 술을 좋아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진짜 술을 마시기 위해 회사를 다니시는 분 같았죠.

 이분의 스타일은 이렇습니다. 회식을 하러 식당에 가면 기본 반찬이 나오기도 전에 전 부서원들이 소주를 세 잔씩은 마셔야 했습니다.

 상대방이 술을 마시나 안 마시나 지켜보기도 하셨고 원샷을 한 뒤 술잔까지 머리에 털기까지 해야만 했습니다.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그때 깨닫게 되었죠. 부서에서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마저 힘들어하셨으니 그 정도면 말을 다 한 셈이죠



 그때 저는 생존을 위해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거뜬할 신기술 몇 개 터득했습니다.

 바로 그 기술의 이름은 바로 '몰래 술 버리기'입니다. 




이 기술은 다양한 종류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술 몰래 뱉기, 물컵에 술 몰래 붓기, 물을 술잔에 미리 채워 넣기 등 기술을 소위 최대 레벨로 달성하게 되었죠.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타짜의 대사가 절로 떠오르는 손기술이었습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출처 : 좋은데이 공식블로그

 

 그렇게 하지 않고서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다가는 떡이 되어서 온전히 귀가하기 어려워질 것이 뻔하니까요. 이 기술이 제 몸에 온전히 체화되어 가면서 저의 '고통스러운 회식 생활'은 '슬기로운 회식 생활'로 바뀌며 약간 숨통이 트이는 듯했습니다.

 그날의 엄청난 경험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여느 때처럼 저희 부서는 1차로 삼겹살 집에서 식사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2차는 노래방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시절의 회식장소는 직원의 의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물 흐르듯 어디로 간다 하면 따라가면 됩니다.


 2차로 간 노래방은 꽤 넓은 대형 룸이었습니다. 15명이었던 1차 인원은 8명으로 줄어있었습니다. 그때 1차를 마치고 용감하게 탈출한 전우들은 정말 행운아였습니다.

 그냥 노래나 부르고 가리라 생각했던 저는 부장님의 행동을 보며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가운데 놓여 있던 라운드테이블을 한쪽 벽으로 밀어버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고는 갑자기 모두 바닥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부서원들은 수건 돌리기라도 하려는 양 삥 둘러앉았습니다.

 조금 뒤 한 명의 부서원이 검은 비닐봉지를 가지고 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안에는 소주 두 병이 들어있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소주를 건네받은 부장님은 경쾌한 손놀림으로 소주병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잔이 아닌 병뚜껑에 소주를 너무나도 정성스럽게 따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마치 차례 지내려고 준비하종가집 장손처럼 말이죠.


그러면서 나온 한 마디. "이게 코 소독에 그렇게 좋아."


라고 하시며 한쪽 코를 향해 병뚜껑을 가져가시더니 '흡' 하는 알 수 없는 리를 냈습니다. 적지 않은 소주는 순식간에 그분의 메타버스로 차원 이동해버렸습니다. 

 제가 느꼈던 그 순간의 정적은 지금까지도 결코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7명의 사람 모두 눈은 튀어나올 듯 커지고 숨도 안 쉬는 것 같았으니까요.



 결국 7명의 희생양들은 저항하지 못하고 병뚜껑으로 신세계를 체험했습니다. 저는 기가 막힌 손놀림으로 절반 넘게 흘려버렸지만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몇 방울은 코로 보내드려야 했죠.

 소주에는 한 방울만으로도 가공할 만한 힘이 있었습니다. 코 안에 와사비(고추냉이)를 바르는 느낌이랄까요? 불행하게도  한 분의 직원은 우직하게 온전히 다 흡입하겠다고 달려들려다 눈물, 콧물을 쏙 빼며 헛구역질까지 하는 눈 뜨고는 보기 힘든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분도 퇴직하시고 저 역시 연차가 찼고 조직문화도 바뀌어 이런 일이 절대로 생길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만나게 되면 우스갯 말로라도 진짜 왜 그렇게까지 하셨냐고 물어보고 싶긴 합니다.

이병헌이 저라는 얘긴 아닙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이들이 힘들고 고통받지만 직장인들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원치 않는 회식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예전의 일상으로 어느 정도의 회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직장 내의 음주 문화만큼은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꽐라 #주정뱅이 #회식 #꼰대 #소주 #노래방 #주사

#라떼 #코로나19 #집합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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