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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Feb 03. 2022

타짜와의 전쟁

부제 : 어설픈 타짜의 최후

 제게는 인생 영화가 3개 있습니다. 최소 20번 이상은 봐서 거의 대부분의 대사를 기억하고 있는 영화죠. 첫 번째가 재난영화인 투모로우, 두 번째가 술영화라고 할 수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마지막이 전한 오락영화인 타짜입니다.



 타짜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극히 오락성을 추구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명대사와 명장면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경험할 일이 없을 거라 믿었던 세계라 궁금증이 있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도박꾼들의 삶을 뜻하지 않게 겪게 된 일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이들 앞에서 말이죠.



 때는 바야흐로 2주 전 21시. 

 저희 집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친 남자 1, 2, 3호는 오랜만에 의기투합하여 원카드라는 카드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2호가족들과 보드게임을 하면 승률이 난히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10번을 하면 7~8번은 2호의 승리였죠. 그런 이유로 1호는 이 집에서 보드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부담감과 긴장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3호의 심기를 살펴야 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사기진작을 위한답시고 1호가 대놓고 3호를 밀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날의 게임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흘러갔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첫 판은 2호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3호의 표정 점점 그늘이 생기는 것이 보였니다. 두 번째 판도 3호가 진다면 어떤 상황이 생길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죠.



 러던 순간 황을 살피던 1호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두 번째 판을 하는 도중에 책상 밑으로 1호가 가지고 있던 스페이드 에이스(공격카드)를 3호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마치 도박영화의 한 장면처럼 2호가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죠. 3호는 자신의 허벅지를 쿡쿡 찌르는 물건을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받아 들었습니다. 제 알 수 없는 표정을 보면서 말이죠. 카드를 확인한 후 그제야 제 의도를 알아차린 3호는 결국 그 카드를 활용해서 게임에서 이기고 말았죠.


 여기서 끝냈으면 좋았겠지만 다음에 했던 도블이라는 보드게임에서도 속임수를 한 번 더 쓰고 말았습니다.

 이번 게임 역시 1호의 눈대중으로 봤을 때 이번 게임도 2호가 이기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최종적으로 자기가 얻은 카드의 숫자로 승리를 얻는 방식입니다.


 게임을 마치고 자신의 카드 개수를 확인하는 시점에 1호는 또 3호에게 열 장 가량의 카드를 몰래 넘겨준 것이죠.

 그 장면을 눈치채지 못한 2호는 카드를 세어보더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신이 이겼어야 하는데 카드 개수를 세어보니 3호와의 격차가 거의 없이  엇비슷하게 나왔으니 그럴 밖에요.



 그런데  모습을 본 3호가 약간 찔렸는지 순순히 고백을 하고 말았습니다. 1호에게 카드를 몇 장 건네받았노라고 말이죠. 문제는 그 뒤습니다. 1호가 아이를 정직하게 키운 덕분인지(?) 3호는 아까 원카드 게임에서도 속임수가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버린 것이죠.


 물"아빠가 아까도 나한테 카드 몰래 줬지롱~" 이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그 순간 2호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뒤로 문 밖으로 흐느끼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죠.




 저나 둘째 입장에서는 가벼운  장난이었지만 첫째 입장에서는 가장 믿었던 가족 두 명이 짜고 자신에게 사기도박을 한 셈이었죠.

 저는 무릎만 꿇고 손바닥만 빌지 않았을 뿐 자기 전까지 미안하단 말만 수십 번을 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상황이긴 했죠. 그렇다고 괜히 둘째를 탓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은 장난과 기만, 희롱, 사기의 경계를 애초부터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버린 엄연한 제 불찰이었으니까요. 가볍게 그리고 장난스럽게 시작한 타짜 놀이는 결국 철퇴 수준의 처절한 응징을 받고 끝이 났습니다.


 결국 다음 날 아침까지 마음이 풀리지 않은 첫째에게 사과편지까지 남겨놓고 출근하고 나서야 상황은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아침 출근 전 급하게 써서 남긴 사과 편지


 도박은 나쁩니다. 사기도박은 더 나쁩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 따라 하지 말자.."

  싼 수업료로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합니다. 


어이, 고광렬이.  너는 첫 판부터 장난질이냐!


#타짜  #도박  #장난  #사과  #배신  #용서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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