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의 친구 한 명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구들끼리 게임을 하면서 벌칙으로 장고를 한다고 말이죠.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말을 못 알아듣는 일처럼 난감한 상황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순간부터 대화가 통하지 않는 꼰대처럼 보일 테니까요. 짧은 순간 저는 '장고가 뭐지?'라고 생각하면서 5G 급의 속도로 머리를 회전시켜 봤죠. 길게 고민한다는 장고(長考)부터 영화 <장고>까지 상상력을 확장했지만 곧장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답이 나오지 않아 조심스레 되물었죠.
"그런데 장고가 뭐야?"라고 말이죠.
정답은 '장난고백'이었습니다.
방식은 메시지를 통해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이성친구에게 고백을 하는 식입니다.
사실 장난고백의 기원은 만우절입니다. 만우절만 되면 어떻게 장난을 쳐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검색어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장고라는 콘텐츠 또한 청소년 또래들 사이에서 수년 전부터 있어왔죠. 의외로 그 유행이 오랜 시간 동안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점이 제게는 의외였습니다.
그렇게 이 희한한 놀이는 만우절이 아닌 평소에도 스스럼없게 하는 장난이나 놀이처럼 점점 더 진화하게 되었죠. 심지어 아이들끼리 게임의 벌칙으로까지 사용하고 있다니 그 점이 놀라운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장난이 물론 서로가 이런 장난에 대해서 스스럼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이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부분 두 가지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런 놀이문화가 서로 웃으며 아니면 가볍게 욕하면서 마무리가 된다면 문제 될 일이 없습니다. 장고가 학생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다 보니 이런 행위가 학교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로 다투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어서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연애나 고백을 너무 가벼운 장난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생뚱맞고 장난스럽게 고백을 하는 습관이 생긴다면 어떤 상대방이 그 고백을 받아주겠어요.
요즘 출생률의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저하된 상황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 세태가 반영되었고 더 나아가 연애도 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설문조사를 보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문화가 썩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 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거절당할 수 있다는 각오도 필요하죠. 그런 걱정을 하다 보니 이런 놀이문화가 생기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장난처럼 한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걱정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대신 성공할 확률 또한 현저히 떨어집니다.
누구나 그렇듯 실패나 거절에 대해 이겨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없다면 연애가 아니더라도 인생이라는 항해를 할 때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문화에 대해서 들었을 때 좀 걱정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꼰대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이 사람과 사람이 교제하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좀 더 진지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