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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네 요리 음식 이야기
아픈 엄마 대신 아들이 반찬을 만들었다
아빠도 함께
by
페르세우스
May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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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아내가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런지 요 며칠 사이에 계속 기침을 하며 앓고 있습니다. 출퇴근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집에서까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력은 없는 상황이었죠.
사실 어제저녁에 아내가 미역국이나 소고기뭇국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싶어서 국거리 소고기를 사다 놓았습니다.
국이나 찌개 종류는 아내의 실력이 저보다 훨씬 나아서였죠. 하지만 기침을 계속하는 아내에게
"혹시... 소고기뭇국... 안 될까?"라고 했다가는
남아있는 힘을 모아 등짝스매싱이 날아올 테니 목구멍에서 올라오려는 말을 잘 삼켰습니다. 사람은 지식보다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러면 그냥 내일 제가 천천히 하면 되겠다 싶어서 재료라도 손질해놓으려고 하는 찰나 행복이가 옆에 나타납니다.
"아빠, 요리하려고요?"
"응, 소고기뭇국이나 만들까 하고"
여기서 제가 실수 하나를 합니다. '내일'이라는 시제를 빼먹은 거죠.
행복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와! 진짜 맛있겠다"
라고 말하고
건강이는 그 말을 듣더니 갑자기
"저도 같이 할래요"
라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밤 9시 20분에 쉬려다가 난데없는 야간요리의 세계로 입성하고 말았습니다.
부랴부랴 냉장고에 넣어둔 무를 꺼내서 손질을 하고 썰기 시작합니다. 하다 보니 나름대로 경력직 조수(건강이)가 한 명 있으니 이왕 하는 김에 한 가지 반찬 정도는 더 만들어도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욕심을 내기로 합니다. 무를 써는 김에 무생채도 썰어서 만들어 버리자고 말이죠. 건강이가 무와 고기를 볶는 동안 저는 무채를 썰기 시작합니다.
육수에 들기름과 함께 볶은 고기와 무, 파를 넣고 본격적으로 소고기뭇국을 끓이면서 건강이에게 레시피를 보면서 무생채 양념을 꺼내라고 합니다. 몇 번 시켰더니 이제는 뭐가 어디 있는지 조금 아는 눈치입니다. 생각보다 효율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끝났다면 괜찮았을 텐데 저는 또 욕심을 내고 맙니다. 고춧가루와 간 마늘, 간장 등의 양념을 보니 냉장고에 넣어둔 진미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두 번째 요리인 무생채를 만들면서 또 세 번째 요리인 진미채무침까지 시작하게 됩니다.
찜기의 증기로 진미채를 푹 찌는 동안 양념을 만들어서 건강이에게 프라이팬에 끓이라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행복이는 무생채에 들어간 양념을 버무리는 역할을 합니다. 제가 지시한 양보다 고춧가루를 생각보다 많이 넣어서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맛은 좋았습니다.
마지막 반찬인 진미채무침은 찌는 과정이 좀 부실했는지 약간 딱딱한 부분이 있어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조만간 심폐소생술로 다시 한번 되살려봐야겠어요.
50여 분의 요리 끝에 세 가지 요리가 최종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먹고살려고 하니 이렇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군요. 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온몸에 힘이 다 풀리는 느낌입니다. 제법 에너지를 많이 썼으니까요
그동안 한 번에 한 가지 요리를 해본 적은 많지만 세 가지 요리를 그것도 아이들에게 임무분담을 주면서 지휘한 적은 처음이라 그 또한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몇 번만 더 연습을 시키면 스스로 뭔가를 혼자 만들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힘들었지만 반찬을 세 가지나 만들어놓으니 든든합니다. 내일 아침에 뭐 먹여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둥이들도 이번에는 자신들의 비중이 높았다는 사실을 아는지 제법 어깨가 으쓱해 보입니다.
오밤중에 복닥거리면서 힘들게 만들기는 했지만 얻은 점이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정성이라는 계량할 수 없는 가치를 배제한다면 언제나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옳다!"
한 줄 요약 : 할 때는 힘들지만 하고 나면 또 즐거운 활동, 바로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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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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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생 쌍둥이 아들 둘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브런치를 통해 자녀교육에 대한 내용을 글로 쓰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활발한 소통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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