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술 무식자입니다. 중학교 때 데생에 잠시 재미를 느낀 이후로 아예 담을 쌓고 살았다시피 했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미술의 역사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미술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하나 구입해서 책장 한편에 떡 하니 구비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기본적인 소양이 매우 결여되어 있는 제게 너무나도 어렵고 두꺼운 책이었습니다. 두 번 정도 탐독을 시도하다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숙면에는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이 아이와 결별하게 되었고 책장에서 깊은 겨울잠을 자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미술과 잠시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게 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김영숙 작가의 <1페이지 미술 365>와 조원재 작가의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 덕분이었습니다. 이 책들이 제게 가장 쉽게 와닿았던 이유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으로 구성한 여느 책들과는 달리 관심 있어하는 내용들로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끊어서 읽기 좋도록 구성된 호흡이 짧은 책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두 권의 책 덕에 저는 다시 미술이 너무나도 재미있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점의 작품도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습니다. 얕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지식도 얻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화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달프고 배고픈 직업인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단, 루벤스나 피카소 같은 몇몇 화가만 빼고 말이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게도 전혀 예술적인 유전자나 감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 듯했습니다. 제게 눈에 띄는 미술적인 재능은 없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취미활동으로 그림을 그리시고 둘째 아이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예전 BTS 지민, 정국 초상화 참조) 장래희망을 화가라고 하니까요.
그러던 차에 이번 연휴 때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관람할 일정을 잡은 것이죠. 둘째에게 화가가 되고 싶다면 좋은 작품들을 많이 봐야 한다며 호기롭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풍부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와 작품을 보며 소소하게라도 토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그만 기대도 있었죠.
어머니가 직접 그리신 풍경화
그런데 이번에 저는 다시 한번 더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막상 관람을 시작하고 나니 제 생각은 참 오만한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관람했는데 제가 해설을 읽어보지 않고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은 절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짧은 지식으로 작가의 심오한 철학이 담긴 미술작품의 세계를 너무 쉽게 이해하려 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죠.
국립현대미술관-서울에서 관람 가능한 전시
물론 미술을 보는 안목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미술관 관람을 통해서 저의 부실한 감상능력이라는 현실에 부딪히고 나니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드는 것을 막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꾸준히 눈에 다양한 작품들을 담아가면서 미술이라는 것을 즐겨보려 합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것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미술품이 품고 있는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미술의 역사는 아직 제게 너무나도 재미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