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챙겼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 여러 계획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어린이집 방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오랜 기간 동안 다녔던 어린이집이었죠.
2011년 6월 둥이들이 힘들게 태어나고 난 뒤 4개월 무렵이 되었을 때 아내에게 산후우울증이 생겼습니다. 저도 집에 있을 때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나 집에서 매일 돌아가면서 울던 둥이들을 돌보는 아내만큼은 아니었겠죠. 그때 가능했던 선택지 중 하나가 복직이었습니다.
다시 출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아이들을 맡아줄 보육 시설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0세 반은 많지 않았고 받아줄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크기도 했는데 다행히 두 아이를 받아줄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때를 시작으로 기어다니지도 못했던 4개월부터 학교 가기 직전인 7살이 될 때까지 총 6년 반을 다녔으니 정말 오래 있었죠. 지금은 0세 반 자체가 없어졌으니 24년의 역사 동안 어린이집에서 가장 오래 다닌 기록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이죠. 전국을 통틀어봐도 이런 경우를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신세를 진 인연으로 어린이집 운영위원장도 아직 맡아서 하고 있던 상황이었죠. 운영위원회는 분기별로 열려서 세 달에 한 번씩은 들르는데 어린이집에 다녀왔다고 말할 때마다 자신들도 가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냥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는데 여러 번 같은 이야기를 하길래 이번에는 따로 시간을 내서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채비를 한 뒤 출발합니다.
때마침 어린이집은 방학 기간이라서 통합보육을 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한산해서 더 좋겠다 싶었습니다. 원장님은 휴가라서 부재중이셨지만 아이들 담임을 2년씩 해주셨던 선생님 두 분 모두 출근하시는 날이어서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오랜만에 본 둥이들이 훌쩍 커서 중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들 놀라시더군요. 그 사이에 많이 크기는 한 모양입니다. 4학년 때쯤 한 번 지나가면서 인사를 드리고 간 뒤 3년 만에 왔으니까요.
둥이들은 교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7년 동안 매년 자신들이 어디 있었는지를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장난감이나 교구 정리도 하면서 말이죠. 서로 이거 기억나냐, 저거 기억나냐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이곳에 추억이 많이 있었기에 꽤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거기에 있던 아이들도 어른도 또래도 아닌 애매한 나이의 오빠이자 형이 있으니 신기한 모양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른 선생님들도 이런 상황이 재미있으셨는지 중학생들에게 소소한 일거리를 주면서 거들어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교실 투어를 마치고 선생님과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그런데 건강이가 갑자기 선생님께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선생님, 예전에 제가 선생님한테 블록을 던져서 안경알이 빠진 적이 있는데 기억하세요"라고 말이죠. 놀다가 성질이 나서 던진 모양인데 그런 사건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죠. 계속 신경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짧게 있기로 약속했는데 한 시간이나 있다가 나왔습니다. 나오는 길에 예전 어린 시절에 자주 갔던 놀이터도 구경해 봅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놀기에는 너무 작은 곳이 되어버렸지만 그 시절 아이들과 땀을 뻘뻘 흘리면서 깜깜해질 때까지 놀아주느라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저는 세 달에 한 번은 꼭 오니 새삼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는 특별했던 기억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대단한 경험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보낸 그 시간이 정말로 소중한 추억으로 다시 한번 기억될 듯해서 저도 함께 기분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의 시간이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줄 요약 : 아이들이 부모에게 원하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른들은 쉽게 잊는다. 자신들도 어린이였던 적이 있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