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출하거나 주차장에 가보면 못 보던 색상의 번호판이 눈에 띌 때가 많습니다. 바로 연두색 번호판인데요.
올해부터 8000만 원(출고가 기준)이 넘어가는 차량을 업무용으로 구입, 리스, 렌트할 때는 이처럼 연두색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고 합니다. 2020년부터 법안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논의되어 오다가 최종안이 확정되어 올해 1월부터 시행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독특한 정책이 시행된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습니다.
법인차는 차량 구입비나 보험료, 유류비 등을 모두 법인이 부담하고 있는 데다 연간 최대 1500만 원까지 경비처리(세금 감면)도 가능합니다. 급여를 받는 직장인들에게는 또 다른 세계인 셈이죠. 문제는 이런 제도를 악용해서 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고가의 차량을 구입할 뿐만 아니라 배우자나 자녀가 사적으로 사용하는 사례죠.
부적절한 사용이 적발되면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 혐의를 받아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안으로 처벌을 받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규제가 허술해서 이런 행태들이 관행처럼 유지되고 있어서죠.
현재 슈퍼카라고 불리는 고가의 차량의 10대 중 6대가 법인차량이었다는 점만 봐도 그동안 어떤 식으로 운영되어 왔는지 충분히 상황을 짐작게 합니다. 통계자료 몇 개만 찾아봐도 그동안내야 할 세금들이 어디서 새고 있었는지 금세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가 채택된 방안이 법인전용 차량에 번호판을 다른 색깔로 만들면 어떻겠냐는 희한한 대책이었습니다. 아마 색깔로 구분하게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감시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겠죠. 제가 생각하기로는 슈퍼카로 불리는 고급 차량에 대한 세금 혜택 자체를 없애버리던지 일정 금액 이상의 차량은 법인 명의로 아예 사지 못하게 하면 될 텐데 왜 저렇게 어렵게 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이 제도는 경차를 포함해 법인에서 사는 모든 차량이 적용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논의를 계속하던 중 렌터카 업계와 민간 법인들의 강한 반발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감안해 결국 8000만 원 이상의 고급 차량에만 녹색 번호판을 달기로 했고 현재 지금처럼 시행 중이죠.
재미있는 사실은 최초의 안보다 훨씬 퇴보된 상태로 법안이 시행되었지만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는 점입니다. 8월 말에 나온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라는 곳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1~7월 8000만 원 이상 법인차 신차 등록 대수가 작년과 비교했을 때 27.7%나 감소한 2만 7400대였다고 합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등록 대수인 3만 7906대와 비교하면 1만 대나 넘게 줄어든 수치로,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감소율을 기록했다고 하죠.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6개월 렌트라는 꼼수로 번호판 색깔을 피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꽤 효과가 있었던 셈입니다. 법인에 대한 세금 감면은 정당한 기업 활동에 대한 국가의 지원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놀라울 지경입니다. 이러니 정직하게 세금 내는 사람들만 바보 같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죠.
한때 대통령 후보로도 출마했고 기행을 일삼던 인물이었던 허경영 씨가 했던 말 중에 제가 유일하게 공감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마음먹고 찾아보면 예산이나 세금이 새고 있는 구멍은 이 한 곳만은 아니겠죠. 제가 회사를 다니면서느꼈던 부분도 꽤 많았는데 국가적으로 따져보면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금액으로 따져도 어마어마한 수준이겠죠.
당장 바뀌지는 않겠지만 집단지성의 힘이 모여 이렇게 불필요하게 돈이 새는 부분들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한 줄 요약 : 돈 들어오는 구멍을 많이 찾는 방법도 좋지만 나가는 구멍만 잘 막아도 부자가 될 수 있다. 개인이든 나라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