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16년에 소중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비영리단체인 비전케어에서 진행하는 KEPCO Eye Love 1004 프로젝트 참여였죠.
회사에서 의료보조 업무 역할을 할 수 있는 일부 인원을 차출했는데 제가 사내기자단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던 터라 운이 좋게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프로젝트의 핵심은 백내장 수술이었습니다. 베트남과 같은 지역은 안과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백내장을 넘어 실명에 이르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의 한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우리나라 의료진들과 현지 의료진들이 협업하여 수술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죠. 저는 의료인이 아니다 보니 동공을 확대시켜 수정체 혼탁의 정도와 위치를 확인하는 검사 과정인 산동제를 넣는 업무와 서류정리 업무가 배정되었습니다.
그때 했던 경험은 기사를 세 개나 쓸 수 있을 정도로 에피소드가 많았으며 제게는 남을 돕는 일에 대한 가치를 배우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백내장이라는 질환에 대해서도 제법 배울 수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그때의 경험과 지식이 도움이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장모님의 백내장 수술 때문이었는데요. 최근 장모님께서 안과에 검진을 하러 가셨다가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결과를 받으셨습니다. 연세가 있으셔서 조심하셔야 할 때가 되었는데 우연하게 발견하게 되었죠.
부랴부랴 수술 날짜를 잡고 저는 따로 휴가를 하루 냈습니다. 장모님을 모시고 안과에 가기 위해서였죠. 안과에 가서 안약을 넣고 수술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는 동안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산동제를 넣고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기는 했지만 수술 동의서를 쓸 때가 되니 제가 왜 와야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보호자에 제가 이름을 적고 서명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동의서에는 관계를 적는 공간도 있었는데 '사위'라고 적었죠. 간호사님께서 사위와 함께 오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시면서 놀라시더군요. 장모님은 수술을 무사히 마치셨고 일정 시간 동안 병원에서 머무르며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신 뒤에 집으로 오셨습니다. 아무래도 눈에 대한 수술이다 보니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제 경험담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드리니 한결 나아지신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모님을 부축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더군요. 2009년 결혼을 할 무렵에는 엄청 정정하셨던 장모님이 이제는 연세도 드시고 많이 약해지셨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거기에 이제 저도 많이 철도 들고 듬직해져서 장모님께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참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부족한 모습이 눈에 보일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듬직한 마음이 드셨겠다 싶었죠.
그러면서도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부모님이나 처가 어른들께 듬직한 모습을 보일 기회가 생긴다는 의미는 결국 어른들은 더 기력이 없어지신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야속한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데 아직 철없는 아들, 철없는 사위로 남을 수 있도록 네 분 모두가 계속 정정하셨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