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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나타난 새로운 살림남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저는 정리를 좋아합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 치울 정도로 꼼꼼한 편은 절대 아니지만 바닥에 뭐가 굴러다니는 꼴을 못 견디는 편이죠. 다른 집안일도 많이 하는 편이니 살림남이라고 할 수도 있을 법합니다.


아이들은 보통 저한테 몇 가지 안 되는 일로 혼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가장 많은 빈도 중 하나가 물건을 아무 데나 놔두거나 정리를 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렇게 잔소리를 해와서인지 이제는 정리에 대한 습관이 제법 생겼죠.


예전에 둥이들은 엄마들끼리도 잘 아는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그 친구방을 치워준 적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여자친구였는데 말이죠. 물론 친구와 그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이유로 놀라움을 줬죠.




어느 날 세탁이 끝난 빨래를 소파에 놓고 정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원래는 아이들과 함께 빨래를 개다가 각자 서랍장으로 가져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 양말과 속옷을 서랍에 넣어달라고 행복이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냥 한 번 시켜봤죠.



그런데 갑자기 행복이가 제 서랍장을 열어 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아빠 서랍장 좀 정리하면 안 돼요?"

평소 저는 속옷과 양말을 마구잡이로 넣어두고 있었는데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어지러웠죠. 차마 프라이버시상 어질러진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데 정도는 정리하라는 잔소리를 하면서 키웠습니다. 행복이에게 그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서 안 보이는 데까지 정리하고 싶은 단계로까지 진화하게 된 모양입니다. 때마침 제 서랍장이 첫 번째 타깃이 되었죠. 처음에는 그냥 놔두라고 했습니다. 크게 기대치가 없어서였죠. 저도 한 번 마음먹으면 금방 정리를 하니까요.


계속 잘할 수 있다고 설득을 하길래 제 감독하에 진행하기로 합니다. 물론 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죠. 정리 끝에 몇몇 양말들은 버리기로 합니다. 버리면 쓰레기라서 계속 보관하고 있었는데 몇 년을 넣어놓고 쓰지 않았던지라 결국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양말을 남에게 쓰라고 줄 수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은 편해집니다.




행복이가 정리가 다 끝났다며 서랍을 자신만만하게 열어 보입니다. 제법 정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빨간 바구니는 학교에서 쓰던 물건인데 여기에 넣고 속옷을 담는 용도로 활용했더군요. 그런 임기응변은 제법 칭찬해 줄 만했습니다. 얘가 이렇게 꼼꼼했나 싶어서 칭찬을 많이 해줬습니다. 적어도 서랍 정리하는 능력은 저보다 낫더군요.




한 번 일하는 모습을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욕심이 생겼습니다. 서랍장 위에 있는 엄마의 화장대도 함께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죠. 사실 그곳은 금남의 구역이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뭐가 뭔지 모르니 치우기도 어려워서였죠. 한 번 정리를 했다가 아내에게 엄청 혼난 적도 있어서 거의 그야말로 눈으로만 구경하는 유적지나 다름없습니다.


행복이와 업무를 분담했습니다. 애매한 제품들을 모두 다 다 들어내고 바닥을 닦아냅니다. 유통기한을 보고 확실히 버려야 할 물건들과 물어보고 처리해야 할 물건들, 그냥 놔둬야 하는 물건들을 분류합니다. 그렇게 두 군데를 정리하고 나니 마치 새 집에 이사를 온 듯한 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집안일을 열심히 시킨 덕을 본 듯해서 기분도 좋았습니다. 화장대는 제 숙원사업 중 하나였는데 아들 덕분에 떡 본 김에 제사를 잘 지냈죠. 이제 아이들도 이것저것 많이 시켜봤더니 제법 살림남(살림하는 남자) 티가 납니다. 나중에 어떤 친구가 데려갈지 모르겠지만 집안일은 잘할 테니 그 점에 대해서는 제법 가산점을 받겠구나 싶었죠.


집안일을 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학업성취도가 좋다는 이야기는 제 책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호주 라 트로브 대학교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집안일을 규칙적으로 돕는 아이들이 학업성취도가 더 높았고 문제 해결 능력 역시 더 높았다'라고 밝히기도 했죠.




새롭게 우리 집에 살림남이 나타난 듯해서 이 집의 대장 살림남으로서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습관으로 들이는 데까지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자리 잡으니 이보다 더 좋고 편할 수가 없군요. 다음번에는 또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살림남 2호 건강이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한 줄 요약 : 집안일 잘하는 사람으로도 잘 키우고 싶습니다. 그 아이의 행복하고 건강한 인생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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