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6 달팽이

아직 잊지 않은 우리의 친구.

by 페르세우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패닉 '달팽이' 중에서



집에서 한 때 달팽이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다니던 과학학원에서 한 번 키워보라고 준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키운 첫 번째 애완동물이었죠. 1회용 테이크아웃 커피잔 바닥에 전용 흙을 깔아서 그곳을 집으로 만들어주었니다.


그 뒤로 좀 더 넓은 플라스틱 통으로 옮겨주었습니다. 상추도 잘 먹고 크게 문제가 없던 달팽이는 어느 날 갑자기 움직이지 않더니 그대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존재를 식구로 맞이한다는 것은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부터 아이들도 느끼기 시작한 듯합니다. 집 근처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지만 아직까지 아이들은 잊지 않고 있네요.



달팽이랑 함께 지내던 2020년 아이가 일기장에 써놓은 시를 옮겨 붙여봅니다. 그때 일기장을 찾느라 아이들과 한참 애를 먹었네요.


달 팽 이

-우리 집 2호-


달팽이는 느릿느릿 기어가네.

아기 열차처럼 천천히.

달팽이야, 너는 왜 이렇게 느려?

나는 1km를 가는데 10분 걸리는데

너는 몇 분이 걸리니?

아마 너는 하루 넘게 걸릴걸?

하하! 정말 느린 달팽이와 술래잡기하면

술래는 계속 달팽이.


ps. 오늘 달팽이가 일기장을 갉아먹었다. 달팽이 이놈!

달팽이의 흔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No.5 룰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