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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Mar 10. 2022

공기와의 전쟁

Air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조금씩 놀이방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몸놀이 위주보다는 머리를 써야 하는  보드게임 위주로 조금씩 비중이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죠. 나이 먹어가며 체력 부담이 생기는 애비의 입장에서는 참 감사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갑자기 뜻밖의 놀이에 빠졌습니다. 바로 공기놀이입니다. 원래 공기놀이는 여자아이들이 즐겨하는 아기자기한 놀이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남자들이 더 잘하는 경우 많습니다. 소근육 발달과 더불어 집중력이나 순발력 향상에도 좋으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시끄럽거나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도 않으니 금상첨화입니다.



 공기놀이가 언제부터 유래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초 이규경(李圭景)이라는 분의 『오주 연문 장전 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라는 문헌에 '조약돌을 가지고 하는 아이들의 놀이를 공기라고 하는데, 조약돌을 공중에 던져 받는다'라고 기록된 것으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놀이로서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공기놀이가 저희 집에 유행이 되기 시작한 것이죠. 며칠 전 쉬는 날, 아이들이 낮에 갑자기 공기놀이를 기 시작합니다. 엄청 진지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하고 있으니까 켜보던 저도 끼고 싶어 집니다. 슬쩍 1호에게 물어보니 공기 세트는 두 개밖에 없다며 끼워주지 않겠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 정도로 쉽게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가격은 400원, 택배비는 3,000원.


 이런 식으로 한두 번씩 아이와의 놀이에서 뒤로 빠지게 되면 함께 놀 기회는 점점 희박해질 테니까요. 이들이 저와 함께 놀아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이젠 제가 아쉬워지는 것이었죠.

 지금 당장 제 시간이 생긴다고 마냥 즐거워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잠깐 동안의 고민 끝에 어른답게 근엄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떼를 씁니다. 나 좀 끼워달라고요.


 

 결국 우격다짐에 가깝게 세 명이 돌아가며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꺾기(참고자료 참조)로 열 번의 공기를 손에 쥐는 사람이 이기는, 즉 10년을 채우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손이 녹슬었다 하더라도 예전의 가락은 남아있었나 봅니다. 몇 번 해보다 보니 손도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운 상황에 봉착합니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실수를 연발하며 평소보다 맥을 못 추는 것이었죠. 이런 분위기로 본실력대로 하면 금세 끝나버릴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측이 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 머리는 빛의 속도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이기면 안 된다고요.  

 결국 비등비등하게 게임은 흘러갔고 모두 상처를 크게 받지 않는 선에서 놀이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많은 아빠들이 아이들과의 놀이에서 범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아이와의 놀이에서 무조건 져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아이가 지는 법도 배울 수 있어야지." 일견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오은영 박사는 일전에 한 방송에서 "아이들은 어차피 아이들의 세계에서 결국 실패와 좌절을 겪는데 부모와의 놀이에서까지 그렇게까지 필요는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아빠나 엄마와의 놀이를 통해 패배의 쓴 맛을 미리 맛보기보다는 즐거움을 느끼고 애착을 향상하는 것이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와 동시에 아이에게 조금씩 패배에 대한 경험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하게 해 주면 좋겠죠.

 늘 느끼지만 참 부모 노릇 어렵습니다.


#공기놀이 #조선시대놀이 #택배비 #외면받는아빠 #오은영박사 #실패 #좌절 #고의패배 #승부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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