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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비싸서 직접 만들어 본 오이소박이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저는 요리를 자주 합니다. 잘해서도 아니고 좋아해서도 아닙니다. 교대근무라 집에 있는 날이 많은 데다 아내가 저보다 퇴근이 불규칙했습니다. 그렇다고 항상 사 먹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요리를 하게 된 생존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메인요리를 비롯해 밑반찬, 국, 나물까지 다양한 요리를 시도했고 나름대로 호평을 받았으나 지금까지 제게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세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김치였죠.


김치 장인들이 써놓은 글들을 보면 레시피대로 하면 된다고들 말씀하시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다 이상하게 쉽게 다가가기 힘든 영역들이 있잖아요. 제게는 김치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김치와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하루하루 시간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오이소박이를 한 무더기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엄청 잘 먹었습니다. 사실 아이들의 입맛은 그야말로 토종 그 자체입니다. 희한하게 피자나 햄버거, 토스트 종류는 거의 먹지 않고 오리지널 한식 위주로 먹어왔죠.


오이소박이를 열심히 먹던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내를 향해 오이소박이가 얼마였냐고 지나가듯 물었습니다. 아내의 답을 들은 저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만 원어치야. 원래 김치 종류가 비싸."


아이가 잘 먹으니 그 정도 돈을 못쓸 정도는 아니지만 계속 김치 만드는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나이가 들면 더 하기 싫어질 테니까요. 앞으로도 이렇게 비싼 오이소박이를 사서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겠죠?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인터넷에 파는 제품들도 결코 값이 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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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에는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지만 하루가 지나자 마음처럼 몸이 바로 움직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한 번은 맛있게 사 먹었으니 당장 만들 필요도 없기도 했죠. 그리고 그렇게 말처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저는 진작 제2의 어남선생이 되었겠죠?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과일을 사러 갔다가 오이가 너무 싸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일단 오이 다섯 개가 2천 원이더군요. 장바구니 물가에 조예가 깊은 제게 이 정도 시세면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야 합니다. 굳이 뭘 만들지 않더라도 쌈장에 찍어먹으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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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오이소박이를 위한 다른 부재료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본격적으로 제 생애 최초의 오이소박이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제 요리의 원천은 휴대폰 레시피 앱입니다. 거기에 레시피를 올려주시는 분들이 제 요리 선생님들이시죠.


먼저 오이를 썰어 소금을 넣은 뜨거운 물과 함께 데쳐줍니다. 레시피에 이렇게 해야 양념이 잘 밴다고 적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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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도 부지런히 만듭니다. 부추, 양파, 고춧가루, 액젓 등등등을 넣어서 버무렸는데 색깔은 그럴싸해 보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저를 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하이라이스의 실패경험이 떠올라 불안한 마음도 듭니다. 변수는 고춧가루가 생각보다 좀 매운 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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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숨이 죽은 오이와 양념이 만나서 미팅을 합니다. 저는 편애를 하지 않는 사람이니 골고루 넣을 수 있도록 애를 많이 썼습니다. 김장할 때 절인 배추에 속을 넣듯 오이에 양념이 골고루 묻어서 스며드는 느낌이 아니라서 걱정스럽습니다. 간이 잘 배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싶었지만 일단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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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오이를 다 버무리고 난 뒤 보관할 통에 옮겨놓고 나서야 끝이 납니다. 맛은 아직 알 수 없으나 제 요리 인생에서 뭔가 새로운 도전을 이뤄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뿌듯하기는 합니다. 그전까지는 한 번 만들고 나면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는 한 끼 짜리 음식이 대부분이었다면 이번에는 처음으로 김치를 만들어봤으니까요.


다만 가성비는 나빴습니다.

대략 들어간 비용을 어림짐작으로 계산해 보니

ㅇ 오이 다섯 개 : 2천 원

ㅇ 부추 한 줌, 양파 반 개, 당근 반 개, 고춧가루 : 대략 3천 원

ㅇ 나의 시급과 정성 : 5만 원


합산해 보니 5만 5천 원짜리 오이소박이더군요.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럭셔리 오이소박이를 만드는 데는 성공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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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정도 지난 뒤 아이들에게 먹여봤는데 엄청나게까지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잘 먹습니다. 열흘 정도 두고 야금야금 남기지 않고 다 비워냈죠. 다행히 만든 보람이 있었습니다.


김치를 만들어보신 다른 이웃 작가님들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들 말씀하시지만 초심자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한 번 했고 앞으로 여러 번 시도를 해보면 점점 더 나아질 테죠.


언젠가는 다른 분들에게 "오이소박이 그거 별로 안 어려워요"라고 할 수 있는 날도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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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면 늘 수밖에 없다. 늘지 않는다면 꾸준함이 부족해서이다. 요리도 글쓰기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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