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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가 사라져 버린 빙하시대, 2박 3일의 기록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11월은 '마름 달'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마름 달'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달을 가리킵니다. 이런 11월에 저희 집에서는 엄청난 사건이 생겼습니다. 바로 보일러 고장이라는 대형 사건이었죠.


때는 2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화롭게 일상을 준비하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보일러에 'AE'라는 특이한 에러 메시지가 뜨더군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역압 발생을 의미하며, 연통(배기구)이 막혔거나 가스 누출을 감지하는 경보기가 작동했을 때 나타난다고 되어 있더군요. 말의 의미는 이해했으나 당연히 해결방법은 알 수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사람을 불러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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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콜센터에 전화해서 AS 접수를 했습니다. 이 업체는 인간 상담사 자체가 아예 없는 듯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AI 상담사와의 통화로 절차가 끝났죠. 혹시나 간단한 조치로 가능한가 싶어서 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문의를 해봤습니다. 하지만 보일러는 조심스럽게 만져야 하는 설비라서 기사가 보는 편이 낫겠다고 하시더군요.


접수한 지 하루 만에 기사님이 방문해서 점검을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여기저기 살펴보시던 기사님은 콘센트를 한 번 뺐다가 꽂았더니 된다며 일단은 단순 에러로 추정된다고 하시더군요. 정밀검사를 하려면 비용도 들어가고 13년이 넘을 정도로 너무 오래된 모델이라 부품을 구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밀검사까지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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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그날 저녁 야간근무를 하고 있던 중 점검을 한 지 10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보일러는 먹통이 되었고 아이들이 샤워를 하고 있는 와중에 차가운 물벼락을 맞고 말았죠. 이번에는 온수는 물론 난방까지 되지 않아 그 시점부터 그야말로 보일러 없는 빙하시대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일어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급한 대로 거실 바닥에 전기매트를 펴고 요와 이불을 깔아서 임시대피소를 마련했죠. 거기서 저희는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는 꼼짝없이 옹기종기 모여서 추위를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거기에만 있을 수 없으니 옷도 평소보다 두껍게 입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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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서는 이것저것 알아본 뒤 저와 아내는 '신규 보일러 설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에 이릅니다. 값은 100만 원에 육박하더군요. 평소 그 정도 금액의 돈을 쓸 때는 저는 꽤 길게 고민을 하는 편이나 이번에는 예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에 기존 제품을 고치더라도 최소 20~30만 원은 나온다고 답을 들은 데다 평소 가동효율도 상당히 떨어졌기에 수리를 한다 해도 다른 고장이 나지 않는다는 확신도 없어서였죠.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빙하기를 딱 하루만 겪었을 뿐임에도 새 보일러에 대한 강한 열망이 샘솟는 느낌이었습니다.


선택한 업체의 콜센터와 먼저 통화를 했습니다. 수리 콜센터는 AI로만 운영이 되는데 새로 사기 위한 콜센터는 사람과 순식간에 연결이 되더군요. 이 대목에서도 업체의 행태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씁쓸했습니다.


토요일에 결제를 했음에도 다행히 월요일에 순차적으로 설치가 가능하다고 하시더군요. 주말 동안 뜻밖의 빙하시대를 겪어낸 뒤 월요일 낮, 드디어 기사님과 새로운 보일러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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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하는 데 오래 걸릴까 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1시간 반 정도만에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평소 자주 고장 나는 가전제품이 아니다 보니 중요하다고 여기지 못했던 보일러가 이렇게 소중한 존재였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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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를 새로 설치한 덕분에 생각지도 않았던 다용도실 대청소도 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지저분한 편이었지만 이번에 설치하는 과정에서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엉망이 되었거든요. 그래도 청소까지 하고 나니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 듯해서 한결 마음이 개운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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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험을 통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속담도 생각이 났죠. 평소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던 가전이었던 보일러가 이런 시기에는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줄 요약 : 보일러가 고장 나고 나서야 보일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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