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반, 인터폰을 누른 택배기사님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최근 저희 집에서는 황당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택배기사님의 인터폰 때문이었는데요.


평일 밤 11시 반에 고요하던 거실에 인터폰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책상에 앉아 있던 저는 부리나케 거실 인터폰 방향으로 달려 나가서 화면을 확인한 뒤 버튼을 눌러 그 소리를 없앴죠. 아내는 11시 무렵 이미 잠자리에 든 상황이었고 아이들 방도 불을 끈 지 5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그 소리를 듣고서 깜짝 놀라서 거실로 나오는 바람에 집은 금세 어수선해졌죠.




택배기사님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니 다들 별일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 시간에 인터폰을 누르는 매너가 아쉬워서였겠죠. 저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택배회사에 전화를 걸어 민원을 제기할 생각을 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인터폰 화면으로 잠시 스쳐 지나갔던 택배기사님의 연배가 제법 있어 보여서였죠. 이 밤에 인터폰을 누르실 정도였다면 경력이 오래되시지도 않으셨을뿐더러 이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도 아니었겠죠. 보통 한 지역에서 오래 활동하셔서 지리가 익숙하신 분들은 인터폰을 누르지 않고 알아서 공동현관 출입 비밀번호를 누르고 배송을 하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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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된 물품은 아내가 쿠팡이나 SSG 같은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주문한 잡화였습니다. 급히 받아야 할 물건도 아니어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인터폰까지 눌러가면서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고 하더군요.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시간까지 일을 해야 하는 택배업계의 근무환경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니까요.




이번에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사건이 워낙 커서 그렇지만 택배업계에는 큰 화두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새벽 배송 금지 논란'입니다. 새벽 배송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위협받아 과로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편의성이나 업계 생존권(소상공인 등)을 이유로 반대 주장도 만만찮은 상황입니다.


노동계에서는 심야 배송(밤 12시~새벽 5시) 자체를 중단하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다수 택배 기사와 소비자, 소상공인은 이에 반대하며 이 문제가 국회 청원까지 넘어가는 등 논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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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인터폰을 누르신 택배기사님으로 인해 야간노동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인터폰만 누르지 않았을 뿐이지 저희 집은 새벽 배송을 편리하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편히 사용해 왔으니까요.


개인적인 견해로는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야간 교대근무를 발암 가능 요인(2A군)으로 분류했듯이 밤 근무가 위험성이 있음에는 분명합니다. 실태 파악을 해서 건강권을 해친다는 결론이 나오면 조치 또한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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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기준을 어디에 둘지가 문제입니다. 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를 배송 금지 시간으로 정하자는 의견도 있고,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로 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느 시간을 택하든 누군가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현장에서 일하는 배송기사들은 덜 혼잡하고 수입도 좋다는 이유 등으로 새벽 배송 제한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까지 도달하는 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용을 지불하며 누리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노동과 불편이 있다는 점이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누군가의 노동과 희생 위에 우리의 편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죠.




그날 밤 이후로 글을 쓰는 지금까지 고민을 했지만 곧바로 명쾌한 답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택배기사님들의 건강권이 가장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일할 권리도 중요하고, 소비자의 편의성도 중요하고, 소상공인의 생존권도 중요합니다. 어느 한쪽만을 위한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이 문제는 제법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 뒤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노동이 있습니다. 그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그리고 그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소비자인 우리도, 그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밤 11시 반의 인터폰 소리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우리 가족을 넘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을 던져줬습니다. 이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 줄 요약 : 하나의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 고민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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