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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탄이 떠오른 김장날, 내년에도 가고 싶은 이유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어제오늘 정말 날씨가 춥습니다. 12월이 되자마자 겨울이 찾아온 듯한데요. 겨울의 준비는 뭐니 뭐니 해도 김장이겠죠.



장모님께서 11월에 제게 여쭤보셨습니다.

"양서방, 11월 말에 언제 시간 돼?"

그렇습니다. 제게 김장할 날을 무조건 맞추시겠다는 의도였죠. 거의 10년째 가고 있으니 딱히 거부할 생각도 없었지만 어차피 제게는 그날을 피해 갈 수 있는 여지가 없었죠.


이번 김장에는 변수가 있었습니다. 원래 네 집이 품앗이처럼 하는 방식이었는데 한 분이 빠지시게 되어 세 분이 김장을 하시게 되었다는 점이었죠. 뭐라도 더 거들어드려야 할 듯해서 평소보다 더 일찍 가기로 했습니다. 6시 반에 나섰는데 평소와 달리 출출해서 휴게소에 잠시 들러 토스트도 하나 먹고 갑니다.




오늘의 결전지인 청주 인근의 텃밭에 도착하니 이미 장인, 장모님을 비롯한 어르신들이 만반의 준비를 해두셨더군요. 사실 이날 전국적으로 오전 시간대에 비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배추에 물이 덜 빠져서 물이 더 잘 빠지도록 하는 작업을 해놓고 조금 쉬다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님들께서 잔심부름할 게 많으니 그냥 있으라고 해주셨는데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장인어른께서 12시 전에는 끝나지 않겠냐고 하셨는데 다들 힘드시다고 말씀하셔서였죠. 김장하는 양이 제법 많아서 고사리 손이라도 보태야겠다는 마음에 저도 멀티 플레이어로 속 넣는 작업에 합류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김치 속을 옮겨 담는 일도 하고 가득 찬 김치통을 닦는 일도 거들었습니다. 이 일이 하루 만에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 최소 이틀짜리 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뒤로는 딴청을 피울 틈이 없었죠. 장모님을 비롯한 어르신들은 한 해 더 연세가 드셨는데 제가 그러고 있으면 안 되니까요.




도착할 무렵에는 비는커녕 햇빛까지 있어서 비닐하우스를 괜히 하시진 않았나 생각했는데 기우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으니까요. 비가 탁탁거리며 쏟아지는 소리가 비닐하우스에 있다 보니 더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비가 오기 시작하니 기온도 확 내려가서 추워졌습니다. 옷을 티셔츠 하나에 경량패딩만 하나 입고 갔던 저는 날벼락이었죠. 옷에 고춧가루를 묻히지 않기 위해 조심하려 했으나 그게 되나요. 결국 묻히고 맙니다. 이런 열악한 날에 김장을 해야한다니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비닐하우스가 튼튼해서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절인 배추 작업을 모두 마무리한 뒤 무와 파가 남아서 양념과 함께 버무리는 작업을 끝으로 얼추 김치를 만드는 일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파김치를 주변 지인들과 나눠 먹었는데 꽤 인기가 좋았습니다. 한 집은 짜파게티를 여섯 개나 끓여 먹었다는 후문도 있었죠.




일을 마쳤으니 밥을 먹어야 하는데 식사준비는 장인어른이 전담하십니다. 수육과 밥을 하셨더군요. 다양한 재료를 넣어서 그냥 삶는 심플한 방식이지만 고기가 정말 부드럽게 잘 익어서 겉절이와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배부르게 먹은 뒤 컨테이너에서 나와서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설거지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기름기가 있는 식기가 많아서 주방세제를 사용했음에도 잘 닦이지 않아 애를 먹기는 했습니다. 바람도 불어서 추웠지만 제가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나가려고 하니 그때서야 하늘이 개기 시작하더군요. 괜히 하늘이 야속합니다.




올라가기 전에 처가에도 잠시 들렀습니다. 미리 담가둔 총각김치를 비롯해 고구마, 쑥떡, 간 마늘, 배, 무, 들기름 등 챙겨주시려는 음식들을 싣기 위해서였죠. 직접 가져다주실 수 있는 상황도 안 되고 가지러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이럴 때 챙겨가는 겁니다. 번거롭더라도 주시는 대로 싣습니다. 어른들의 정성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죠.




정말 든든하게 싣고 두 시간 반을 달려 처제네에 일용할 양식들을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온 뒤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제일 일을 적게 했는데 혼자 김장 다 한 사람처럼 옷 앞부분에 고춧가루가 한가득입니다. 힘들기는 했지만 한 해 살림을 김치냉장고에 가득 채워 넣고 나니 든든합니다.


정리를 거들어주던 아내는

"이제 엄마가 언제까지 해주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빠가 김장하는 법을 제대로 배워와야 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더군요.


힘들었지만 내년에도 가서 일손을 거들고 김치를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풍수지탄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거든요.


한 줄 요약 : 김장, 힘들지만 내년에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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