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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과의 전쟁

by 페르세우스



저와 친했던 지인 중 한 분이 이번에 인사이동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원래는 인사이동을 할 시기도 아니었고 특별한 사유도 없었던지라 의아했죠.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같이 근무하는 분들과의 트러블이 심해서 고육지책으로 그와 같은 방법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었던 것이죠. 그분이 겪은 내용들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느꼈던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많이 났습니다.




원칙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엄정한 조사를 거친 뒤 가해자에게 인사조치나 징계가 이루어지고 피해자도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 않듯 그분도 자신이 그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하는 것으로 이 사안을 매듭짓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그 일은 일단락되었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라면 대부분 이런 식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시고 싶으실 겁니다. 아마도 일이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지인의 걱정과 성정이 이러한 선택에 아마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성 비위 문제나 괴롭힘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교육을 시키고 공문을 보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계도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이런 부조리는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일이 커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일단 공론화되기 시작하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감당해야 하고 그 일을 여러 번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입으로 말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추가적인 정신적 고통입니다. 피해내용을 객관적으로 증명을 해야 하는 부분도 부담입니다. 언어적인 부분이 많다 보니 녹취나 확실한 증인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입증하기도 쉽지 않을 테죠.


게다가 조직의 관리자들의 상당수는 이런 일들이 자신들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합니다. 조용히 묻히길 바라죠. 자세히 조사를 하다 보면 구성원에 대한 관리 책임의 부실로 문책을 당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들은 고스란히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문제를 밝히고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하려면 피해자는 이 사건을 다시 더 큰 용기를 내야 하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저 역시 10여 년 전에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오롯이 그 정신적 고통을 감당해내야 했었죠. 그리고 저를 괴롭히던 사람이 회사 안에서 영향력이 제법 있던 사람이었기에 제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때도 지금처럼 직장 내 괴롭힘 신고제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는데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로 신고한 제가 되려 과한 반응을 보여 사내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니 오싹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저는 그 지인의 결정에 대해 아무런 반론도 해줄 수 없었죠.




인간과 인간이 모여서 구성된 사회는 지금도 수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화로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면 좋겠지만 생각보다는 그 갈등은 쉬이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온라인 공간이 활성화되고 비대면 사회를 경험함으로써 인간의 사회성은 점점 더 퇴화되고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확률보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 더 빠르겠죠.

제도적인 보완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이 생길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경험으로 배워나가고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지인이 새로운 곳에서는 마음이 맞는 좋은 분들과 새로운 마음으로 생활하실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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