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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전쟁

2대에 걸친 노메달

by 페르세우스



예전 저와 제 남동생이 태어났던 1980년대 초반은 남아선호 사상이 아직까지 뿌리 깊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들 둘을 낳으셨던 어머니는 그 시절 주위에서 매우 능력 있고 대단한 어머니로 평가되었습니다. 훌륭히 저희를 키우셨다는 것과는 별개로 단지 아들을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죠.



그런데 시대가 점점 바뀌어가면서 딸이 가진 강점이 재평가가 되었고 2000년대부터는 아들보다는 딸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일명 '신모계사회'현상이 생기면서부터였습니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으로 인해 육아하기 힘든 환경이 형성되어 친정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아들보다는 딸이 의사소통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점도 이러한 분위기에 한몫했습니다.




주위에 있는 미혼자나 신혼부부 중에서도 아들을 선호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바뀐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 남자아이를 이미 키우고 있는 지인 두 명이 또 남자아이를 출산하면서 한숨 쉬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딸이 둘이면 금메달, 딸 하나에 아들 하나면 은메달, 아들만 노메달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아들이 부모의 노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뜻하지 않게 제 어머니께서는 노메달의 불명예를 안게 되신 셈입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몇 가지 부분에서 노메달을 극복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그렇다고 딸이 될 수는 없으니 그 선택지는 넘어갈게요.




일단 저와 어머니가 원고를 매개로 많은 소통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제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수필가로 등단하면서 한국수필가협회 최초의 모자 수필가라는 타이틀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쓴 원고를 검토해주는 과정을 거치며 메일이나 메신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덕분에 다행히 저와 어머니는 다른 모자에 비해서는 평소에 자주 소통을 하는 셈입니다. 급히 쓰는 제 브런치 글의 수많은 오타도 어머니가 자주 알려주시죠.




그리고 저는 어머니의 전담 상담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난 뒤에 어머니께서 친히 임명을 하셨더랬죠. 어머니가 딸이 없으시다 보니 하실 말씀이 있으실 때 수시로 통화할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 일들로 속앓이를 하시는 경우가 많지만 틈틈이 저와 통화를 하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딸처럼 살갑게 팔짱 끼고 쇼핑을 가고 여행을 가지는 못하지만 이죠.



마지막으로 저뿐만 아니라 제 동생이나 두 며느리들도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어머니께서 딸 가진 부모를 얼마나 부러워하시는지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조금은 노메달보다는 높은 단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시다시피 저희 집도 아들 쌍둥이라서 노메달입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에 자주 소통하는 것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아이들이 더 자라더라도 수평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부모를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금메달이 부럽지 않은 노메달이 되는 것은 2대에 걸쳐서 제 삶에 주어진 영원한 숙명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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