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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과의 전쟁

축의금 접수원으로서의 하루

by 페르세우스



지난 주말은 꽤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바로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에 왜 네가 바쁘냐고 물으신다면 이유는 이렇습니다.



일단 제가 결혼식장 입구에서 축의금을 받는 역할을 제 남동생과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집 쌍둥이들과 동생네 딸 둘이 본 예식에서 화동을 하기로 한 것이죠.


이 정도면 바쁠만하죠?




물론 5학년 남자아이들에게 화동이라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아직 징그러워지기 전의 5학년이라서 가능했던 듯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결혼식 날 아침부터 저희 집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일단 아이들은 잘 입지 않는 불편한 옷을 입어야 하고 거기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다듬어야 합니다. 명색이 사촌동생의 잔치인데 대충하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당연히 머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앞에서 봉투를 받는 역할일 뿐이니까요. 양복을 입는 것조차도 귀찮지만 정말 오랜만에 꺼내 입습니다.

하지만 금새 위기에 처합니다. 2년 동안 제 허리둘레는 양복바지를 소화해내기 빠듯할 만큼 늘어났기 때문이죠. 다행히 바지가 터지지는 않았습니다.



오전 시간 내내 정신이 없었다가 예식 1시간 전에 예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코로나19가 생긴 이후로 결혼식장이라는 곳을 한 번도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편으로 사촌 동생의 운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예식장 잡기가 엄청 힘들다고 하니까요.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4241775




원래 화동팀과 접수팀은 따로 단톡방까지 운영하면서 나름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두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결혼식 때 소소한 해프닝은 언제나 생깁니다. 시작부터 우왕좌왕하면서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이 없습니다. 식권이 모자라는 상황도 생기고 중요한 물건을 누가 어디에 뒀는지 급히 추적하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재미있는 사실은 제가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새로운 표현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가방순이'라는 표현을 요즘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당일에 신부를 도와주는 친구를 뜻한다고 하는데 참 표현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ttps://hotissuefinder.tistory.com/276





1시 반부터 본격적으로 로비는 어수선해지기 시작합니다. 거리두기가 종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사람이 많이 오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한꺼번에 접수대로 오는 바람에 정신이 없습니다.

동생과 나, 대부분 내가 동생인줄 안다



친척의 결혼이기에 다른 친척들도 많이 오셔서 인사와 안부를 틈틈이 주고받으면서 일을 하다 보니 효율성이 더 떨어집니다. 사촌동생의 친구들이 많이 온 것을 보면서 역시 결혼은 일찍 해야 신랑 신부의 하객이 많이 온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2시에 본식이 시작되었고 네 명의 아이들은 순조롭게 화동으로서의 역할을 잘했다고 합니다. 사진은 실내에 사람이 너무 많았던 관계로 찍지 못했네요.

본예식 화동 리허설




접수팀도 본격적으로 예식이 시작된 뒤에는 한결 숨을 돌리게 됩니다. 예식을 모두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념사진을 모두 찍은 뒤에는 힘들게 꾸민 김에 겸사겸사 가족사진도 따로 몇 장 찍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기다리느라 거의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러 이동합니다. 어른도 생각보다 많이 지쳤고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음식을 먹더니 좀 기분이 나아진 모양입니다.



음식을 열심히 먹고 있으니까 신랑 신부가 테이블을 돌면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녹초가 된 듯한 신랑과 신부를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 14년 전에 제가 결혼을 했던 때를 곰곰이 회상해봅니다. 4월 25일,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오후 4시 반에 예식을 시작했고 그날 저녁 비행기로 신혼여행을 가는 일정표였으니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이벤트 중 하나입니다. 때의 상황과 비교하면 오늘의 예식은 굉장히 양호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디서 엄살들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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