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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와의 전쟁

부제 : PPT와의 전쟁

by 페르세우스



지난주 며칠 동안 쌍둥이들은 PPT를 만드느라 아주 진을 뺐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학교 과학 5학년 1학기 교육과정에 포함된 3단원 <태양계와 행성>에 대한 발표자료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어학원에서는 가끔 발표를 해본 적이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친구들 앞에서 하는 발표는 처음이라 신경을 쓰며 부지런히 준비를 하는 듯해 보였습니다.

심지어 일요일에는 다른 친구네 집에 가서 함께 준비를 해보겠노라고 해서 갔죠. 그런데 다녀온 뒤 물어보니 막상 뭔가를 해온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른들조차도 모이면 우왕좌왕할 때가 많은데 아이들끼리 처음 만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겠죠.




주말을 포함해서 사나흘 동안을 파워포인트 작업에 끈기 있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파워포인트 작성 능력과 발표능력은 인생을 살면서 도움이 많이 되는 능력 중 하나이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조금 답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좀 거들어줄까? 고쳐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아이가 만든 자료는 적은 경험과 짧은 시간 동안 만든 자료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준 높은 전문 강사들의 강의로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부모에게는 모자란 부분이 눈에 마구 보일 수밖에 없었을 테죠.



다행히 그런 마음을 잘 참아냈습니다. 잔소리처럼 이것저것 참견하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이나 구성에 대한 조언 정도를 해주는 선을 지키면서 도움을 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물론 어른이 마음먹고 아이 대신 만들어줬다면 훨씬 더 잘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뿐이겠죠. 아이의 실력을 키울 수도 없을뿐더러 아이에게 뿌듯함이나 성취감을 줄 수도 없었을 겁니다.




최종적으로 완성한 발표자료를 두 아이 모두 학교로 잘 담아갔습니다. 다행스럽게 발표일로 정해진 사흘 중에서 첫날 발표자로 선정되어 발표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두 비슷비슷한 내용일 수 있어서 지루할 수도 있었는데 뽑기 운도 좋았던 셈이죠. 이런 경우야말로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속담이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25명 중에 7명만 발표를 했다니까 이제 속은 편할 겁니다. 나머지 친구들은 또 고치느라 신경을 더 쓰겠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발표할 때는 떨지도 않고 잘했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자라서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빠가 해왔던 것처럼 말할 기회도 있겠죠.

5년 전의 나
3년 전의 나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선생님은 이 발표를 공지하셨을 때 사전에 혼자 자료를 만들어서 발표를 해도 되고 팀을 짜서 해도 된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따로 자기의 자료를 만들더군요. 아이들이 발표를 한 뒤에 친구들이 "왜 너네는 같이 준비를 안 했어?"라고 말했다 합니다. 같은 배에서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이 있는데 따로 한 건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이들끼리 서로의 자료를 참고하며 수정을 해나갔으니 같이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하기는 했지만요.


어제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이 재잘재잘 발표수업에 있었던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서로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고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발표과제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아낌없이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으로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팀 과제를 자주 할 텐데 그때는 프리라이더 (아무것도 안 하고 막판에는 연락도 잘 안 되는 조원)가 되어서도 안되지만 호구(혼자 조사도 발표도 다하는 조원)도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말이죠.

출처 : 대학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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