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이들을 통해 양가 어른들과 통화를 하면서 특별한 시도를 해봤습니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한 시간만큼 밤에 스마트패드로 놀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고 말이죠.
어떻게 보면 불편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의 최고의 가치 중 하나인 효도,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공경을 순수한 마음이 아닌 물질적인 보상을 위해 하는 행위로 격하시켰다고 느끼실 수도 있으니까요.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그런 결정까지는 기나긴 고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친가나 외가 조부모님께 안부를 화상전화로 곧잘 전하기는 합니다. 물론 어른들은 반갑게 맞아주시죠.
그런데 1~2분이 지나면 대화의 물줄기가 급격히 가늘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른들만 질문을 하고 아이들이 짧게 대답하는 방식은 길게 이어 나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로 예전엔 전화통화를 할 때 저나 아내가 옆에서 아이들에게 해야 할 질문을 코치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어디 아프신 데는 없어요?", "오늘은 뭐하셨어요?" 등의 질문으로 시작해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게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아이들이라 어른에 비해 대화를 이어나가는 능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죠.
어제저녁 같은 경우는 아내는 저녁 약속이 있었고 저는 제출 마감일이 임박한 칼럼을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전화를 드려보라고 하자니 짧은 시간의 대화로 끝날 것 같았죠.
그렇게 된다면 오랜만에 사랑하는 손자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조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한 번 가벼운 마음으로 제안을 해본 것이죠. 아이들에게 이런 미션을 준다면 얼마나 이야기를 더 끌어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었고요.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것에 비해 엄청나게 질문이 많아지거나 대화가 길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모가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질문을 하나씩 코칭해주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발전한 모습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에게 외적 보상을 주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외적 보상만으로는 아이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동기부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동감입니다.
하지만 적절히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외적 보상은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입니다. 이번 사례도 그렇게 생각되었고요. 언젠가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안부전화를 통해 즐거움을 배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아직 가르쳐야 될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조부모님이나 부모랑 전화통화를 할 때 말미에는 꼭 "사랑해요"라는 말을 늘 해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한 것보다 요즘 시대의 효도는 순수한 마음만으로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효도 계약서'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관련 자료가 굉장히 많습니다. 심지어는 이렇게 효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매뉴얼까지 상세히 만들어놓은 사이트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이상한 단어 '효도계약서'
실제로 제 부모님도 주위 지인들께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합니다. 자녀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줘서 능력이 없어지면 나중에 부모를 무시할 수도 있다고 말이죠. 그렇기에 부모가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자식이 효도를 할 거라고 말하신다고 합니다. 일견 효도 계약서 작성의 취지와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당히 안타까웠습니다. 부모의 경제적인 능력으로 효도를 하고 안 하고 가 결정된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자신이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니까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적어도 부모님께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최근 효도와 관련된 설문조사는 머리를 갸웃거리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효도는 자식인 나의 건강함이지만
내가 받고 싶은 효도는 자식에게 자주 연락받고 자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이죠.
나는 부모님께 건강하기만 한 것으로도 효도라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나는 내 자식에게 자주 연락도 받고 자주 만나고 싶고..
이런 설문을 보면서 부모님께서는 자식들이 안부전화만 자주 드려도 좋아하시는데 저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도 해봤습니다.
최근 보건사회 연구원에서 부모님과 따로 사는 3,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하는 횟수를 조사했습니다. 평균적으로 1년에 37회, 1달 평균 3번의 전화를 한다고 합니다.
이 조사와 더불어 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못 하는 이유도 함께 물었습니다
1. 쑥스러워서 2. 용건이 없어서 3. 바빠서라고 합니다.
반성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아마 아이들은 제가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 어른들께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배우게 될 겁니다. 적어도 제가 나이가 들어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대접받고 싶다면 자신의 부모님들께 잘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