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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과의 전쟁

인복인가 일복인가?

by 페르세우스



저는 올해로 회사를 다닌 지 16년 차가 된 직장인입니다. 회사의 규모가 큰 편이다 보니 매년 다양한 상사, 동료를 만나게 됩니다. 정말 좋은 분도 있었고 대단한 분도 있었으며 멋진 분도 있었지만 또 반대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나쁜 인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사람들도 있었으니 바로 일을 몰고 다니는 일명 '일복 많은 사람'입니다.

출처 : 아시아투데이



올해 제가 모시고 있는 상사는 예전 직원 때 저와 함께 근무를 했던 분이셨습니다. 승진을 한 뒤 제가 근무하는 부서로 인사이동해온 것이었죠.

그분은 직원으로 일을 할 때도 뜻하지 않게 일 폭탄을 자주 맞아서 고생을 하셨던 경험이 많았습니다. 입버릇처럼 승진을 하면 더는 이렇게 살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를 하던 일복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상사는 그때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우리 부서에서도 엄청나게 일복이 봇물 터지듯 솟아오르고 말았습니다.

다른 부서 관리자가 휴직을 해서 겸임을 하는 상황이었기도 했고 워낙 좋은 분이다 보니 예전 상사가 직원들에게 던지기만 하던 업무를 자신이 처리하고 사소한 민원전화까지 상대하다 보니 그렇게 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다른 직원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부담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다른 직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분만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다 보니 중간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업무가 불합리하게 배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그분께 일을 무리해서 혼자 힘들게 다 처리하려 하지 말고 저를 포함한 다른 직원들에게 배분을 해달라고 자주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일복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일복이 많은 사람들은 살펴보면 주로 이러한 특징들이 있다고 합니다.

1. 타고난 일머리가 뛰어난 경우

2. 업무 속도가 빠름

3. 아이디어가 넘침

4. 누가 할지 눈치게임을 하던 중 결정권자와 눈이 마주쳐서

5. 그동안의 경력이 화려한 경우

6. 어영부영하다가 주위 사람들과 같이 야근




위의 이유들을 곰곰이 생각해봐도 제 상사와 딱히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이유를 제가 알아내고야 말았습니다. 바로 사람이 너무 좋아서였습니다. 자신의 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싫은 소리를 상대에게 못하다 보니 제대로 쳐내지 못하고 하게 되는 것이 누적되어 이런 결과를 낳게 된 것이죠. 심지어 보험회사 외판원의 전화조차도 강하게 끊지 못하고 5분 넘게 전화를 받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일명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직장생활에 적용되니 '일복 많은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게 것입니다.

출처 : 삼성화재



저도 10년 전에는 일복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회사 안에서도 평판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제 일인지 아닌지 애매한 일은 도맡아서 하기도 했죠. 지사 대표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막내 생활을 오래 했던 제게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인생의 변곡점이 2012년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안전 업무를 맡은 직원에게 사장상을 주라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공교롭게 그 해 제가 안전업무를 맡고 있었던 상황이었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제가 그 상을 받아야 했지만 놀랍게도 그 상은 전혀 그 업무와 관계없는 분이 받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제 회사에 침 뱉기라 말씀드릴 수 없지만 다분히 정치적인 논리에 의한 결정이었죠. 다만 제가 느끼기에는 그 결정은 단순한 강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겪은 이후로는 마냥 사람 좋게 일을 했던 것에서 좀 더 바뀌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도와주는 것에 인색해지지는 않았지만 불합리한 문제에 대해서는 칼 같이 맺고 끊는 능력치가 높아지긴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더 현명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제 내공을 높여주었다는 점에서 상을 날름 뺏아가신 그분께 도움을 받은 셈이어서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없었다면 저도 바보처럼 살았을지도 모를 테니까요.

출처 : 삼성화재



아마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을 늘리며 힘들어하고 그와 대척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런 착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직장 안에서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구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자신의 워라밸이나 일상을 해칠 정도까지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의 평안한 삶을 해칠 수 있다는 진실을 빨리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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