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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와의 전쟁

얘들아, 설마 아빠가 먹고 싶어서 가자고 했겠니..?

by 페르세우스



어제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재택교육이 있었습니다. 오후 5시에 끝나는 일정이었죠. 발표와 토론 위주로 하루 종일 계속된 교육을 마치자마자 저는 반쯤 녹초가 되었습니다. 연히 만사가 귀찮고 입맛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저녁 약속으로 늦는 상황이었기에 저는 빠르게 저녁 메뉴를 결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아이들에게 저녁으로 뭘 먹고 싶느냐고 물었습니다.


성질 같아서는 주는 대로 먹으라고 하고 싶지만 태어날 때 조산으로 또래보다 작게 태어난 아이들이기에 이런 선택의 순간마다 부모는 죄인이자 약자입니다.

입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는 마음의 소리



아이들은 몇 가지 선택지를 내어놓지만 만장일치로 정해지는 의견이 없습니다. 그러다 제게 번뜩 생각나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전에 지인들과 갔던 등갈비 식당이었습니다. 지난번에 갔을 때도 대기시간이 길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식당이었습니다. 큰 기대 없이 갔다가 굉장히 맛있게 먹었기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족들과 오겠노라고 마음먹었던 곳입니다.




문제는 이 식당이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라 오후 5시 반에 도착해도 웨이팅을 해야 하는 곳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빠른 이동이 이 시점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죠.


메뉴 상의를 하던 시간이 5시였기에 아이들과 지금 바로 이동하면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긴급히 제안했습니다.

외관은 허름하지만 대기인원이 어마어마한 곳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싫다고 합니다. 왜 메뉴를 아빠가 먹고 싶은 걸로 정하냐고 말입니다. 제가 사람을 낳았는지 청개구리를 낳았는지 헷갈리는 순간입니다.


요 녀석들이 아빠의 깊은 마음도 몰라주고 일단 새로운 음식은 싫다고 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굳이 니들이랑 안 먹어도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라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들과도 먹을 수 있는데 말이죠. 흥칫뿡입니다.

맛은 좋으나 가성비가 좋은 식당은 아님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며 맛있다고 계속 말해주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다가 맛이 없으면 책임을 지겠다는 말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들을 여기에 데려가야 하는가 하고 말이죠.




식당에 어렵게 도착한 뒤 이름을 씁니다. 그렇습니다. 5시 25분인데도 대기 2번이네요. 이 정도면 매우 양호한 수준이라 생각되는데 아이들은 앉아있은지 5분 만에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냐고 물어옵니다.


제가 원래 아무리 맛집이라 할지라도 기다리면서 밥 먹는 것을 엄청 싫어하는데 이런 점에서 이 아이들이 완전히 저를 빼다 박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제 아들이 맞습니다!!




20분 정도의 기다림 끝에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주문을 하고 나서 조금 뒤 고대하던 등갈비가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등갈비 한쪽을 장갑을 낀 손에 쥔 뒤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는 그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마디에 따라 오늘의 수고로움은 평점이 매겨질 테니까요.




다행히 둘 다 굉장히 맛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가봤던 식당 중에 세 번째 안에 들어간다고 하네요. 다행입니다. 발동이 걸린 아이들은 폭풍흡입을 합니다.

어른 셋이서 먹을 정도의 양인 3인분이나 시켜먹었네요. 저는 오히려 입맛이 없어서 별로 안 먹은 상황이어서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내일도 다시 오고 싶다는 1호의 한줄평에 힘들게 이곳까지 데려온 보람이 느껴집니다.


등갈비를 이렇게 좋아했는데 제가 미처 몰랐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전에 제가 등갈비 구이를 집에서 해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손이 많이 가고 귀찮다는 이유로 자주 못해줬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다시 만들어줘야겠어요.

예전에 직접 만든 등갈비 구이, 색상은 저래보여도 맛은 나름 괜찮았음...



식들 밥을 제때 제대로 챙겨 먹이는 일은 이렇게 언제나 부모에게는 크나큰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내일 아침은 뭐 먹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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