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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의 전쟁

일기로 촉발된 오해

by 페르세우스


최근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서운함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 1회로 가는 논술 수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기 쓰는 방법이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는데 거기서 제가 일기를 쓰는 방식에 대해 아이들이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일기를 쓰는데 매번 시간의 순서대로 쓴다는 것을 얘기한 것이죠.


그런 방식으로 일기를 쓰는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다며 아이들은 제게 선생님의 말을 전해온 것입니다. 2001년 12월부터 일기를 썼고 중간에 좀 쉬었던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20년은 넘게 일기를 써왔던 제게 일기에 대한 지적은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아이들 앞에서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느껴지기까지 했죠. 왜냐하면 난데없이 글 쓰는 방식에 대한 형편없는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이 내용은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에 살을 붙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오해는 잘 정리되었습니다.




사실 일기 습관이 시간의 흐름대로 쓰고 제 생각을 많이 적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군대 시절에 동성애 문제가 신고된 적이 있습니다. 현행법 상 군대에서는 동성애가 금지되어 있었고 헌병대가 출동해 조사를 하고 당사자들은 잡혀가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 불똥이 뜻하지 않게 제게로 튀었습니다. 제가 복무하던 부대의 부대장이 부대 안에 무슨 일이 확인하겠답시고 제 일기장(군대에서는 수양록이라고 부릅니다)을 가져오라고 한 것이죠. 몇 달치의 제 일기장은 그렇게 검열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제 일기장을 누가 보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분이나 감정은 쓰지 않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트집 잡히지 않게 말이죠. 그러다 보니 시간의 흐름대로 설명문처럼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는 방식도 이 사건 때문에 반말체가 아닌 존댓말로 쓰게 되고 더 정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고 한편으로는 그냥 흘려들어도 되었을 선생님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말했을까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마도 수시로 잔소리를 하는 아빠가 일기 쓰는 방식에 대해서 자신들도 잔소리를 하고 싶은데 그냥 말하자니 근거가 부족했던 것이죠. 그래서 나름대로 공신력이 있는 논술 선생님의 말을 빌려서 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시도의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왜 그렇게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제 반응이 평소와 달리 강했기에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죠.


그런데 제게 왜 이런 일기 습관이 생기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는 좀 곤란했습니다. 일기 쓰는 방식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위해서는 아픈 기억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에 좀 더 자라면 말해주려 합니다.




요즘 저는 아이들의 일기 검사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쓴 일기를 만족스러워하며 보여줄 때를 제외하고 말이죠. 3학년 때부터 초등학교에서도 따로 일기를 숙제로 내주지도 검사하지도 않습니다. 누군가의 일기를 본다는 것은 교육적인 부분으로만 합리화 하기에는 문제점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기 검사를 처절하게 받아본 입장으로서 일기 검사는 반대입니다. 아이의 일기 습관을 잡아주기 위한 용도로 아주 잠깐이라면 모르겠지만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는 방식은 오히려 일기 습관을 형성하는데 역효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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