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에 친가를 다녀오며 서울로 올라올 때였습니다. 여주 정도쯤 오니 길이 어마어마하게 막히기 시작했고 저는 길에서 가만히 가다 서다를 짧게 반복하는 것을 싫어했기에 국도로 이동하는 것을 선택했죠. 그런데 지나가는 길 옆 공터에 커다란 트럭이 도로와 직각으로 세워져 있는 광경이 눈에 띄었습니다.
더 크게 제 눈에 띈 광경은 그 트럭에 가득 실어놓은 사과였습니다. 그 위에 붙여놓은 광고성 멘트는 강렬했죠.
<사과 20개 만원>
계속된 운전으로 허리도 아팠던 상황이었고 그 문구는 차를 세우기 위한 동기부여로는 충분했습니다. 이미 몇몇 사람들은 사과를 구경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딱 이런 광경이었습니다(출처 : https://www.instiz.net/pt/5839383)
가만히 비닐봉지에 담겨있는 사과를 살펴보니 뭔가 이상한점이 보입니다. 일단 사과의 크기가 꽤 큽니다. 그리고 제 매와 같은 눈썰미에는 스무 개는 확실히 되지 않아 보였죠.
먼저 아내가 물어봅니다.
"이게 만원이에요?"
아저씨가 대답합니다.
"이건 2만 원 짜리고요 만 원짜리는 알이 작은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다시 물어봅니다.
"여기 이건 스무 개는 들어있는 거예요?
아저씨는 일명 '띠꺼워진'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을 합니다.
"스무 개 정도는 될 거예요."
스무 개면 스무 개고 스무 개가 안 되면 안 되는 건데 대체 이런 대답은 무슨 경우인지 알 수 없었죠. 나중에 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까
"반올림하면 스무 개가 되는 거 아니에요?"
이러네요.
'너 혹시 아저씨의 스파이니?'
반올림에 대해서 잘 기억하고 있어서 기특하긴 하지만 저와 사과 아저씨는 그렇게 계산법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알려줍니다.
아무튼 저는 황당한 아저씨의 대답을 듣자마자 아내에게 바로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며 그 자리를 재빠르게 떴습니다. 이러쿵저러쿵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었죠. 그렇게 파는 것도 그 아저씨의 자유, 제가 그런 낚시 판매에 낚이지 않는 것도 자유이니까요.
이 정도면 낚이지 않겠죠?
어떤 분들은 이런 상황에서 그럴 줄 알았다고 하면서도 이 정도 품질과 가격이면 마트보다는 괜찮은 것 아니냐며 합리화를 하면서 결국 물건을 사기도 합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게 싼 것도 아닙니다.
열여섯 개가 2만 원이었다면 8개에 만원 꼴입니다. 요즘 동네 마트나 재래시장에서 파는 사과가 6~8개 만원 정도 하니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보기에도 어려웠죠.
우리는 주로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서의 삶을 살기 때문에 언제나 합리적인 소비에 대한 도전을 받습니다. 늘 사고 나서 나중에 큰 후회를 하는 물건들이 누구에게나 몇 개쯤은 있을 겁니다. 다행히 저는 물욕이 없는 편이라 '아이고.. 내가 이걸 왜 샀지?'라고 생각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굳이 꼽자면 집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실내 운동기구 정도?
이미 우리 집에서 퇴출돼버린 운동기구(출처 : 다나와)
대형마트에 가서도 인터넷 쇼핑몰보다 비싸다면 사지 않고 바로 장바구니에 담아둡니다. 재래시장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이런 피곤할 정도의 소비행태를 보면서 친구는 "그렇게 피곤하게 사니까 살이 안 찌지"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물건을 파는 사람들만 문제가 되는 것 같지만 글을 쓰는 우리도 낚시라는 비유에서 자유로울 수는 완전히 없습니다. 자극적이거나 호기심을 끄는 제목에 끌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과하지 않은 선에서 양념을 넣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아마도 진정한 낚시의 기술이라고 봐야겠죠. 낚시를 당하더라도 당한 사람이 낚시라고 느끼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 되도록 연마하는 것이죠.
지니치게 자극적인 양념을 쓰는 방식에 사로잡힌다면 글을 읽는 사람은 기만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고 급기야는 글의 신뢰도까지 떨어지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런 상황까지 되니 요즘에는 인터넷상에서 낚시성 제목을 판별하는 AI 기술까지 생겼다고 하니 뭐든 적당한 게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