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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Sep 10. 2022

추석과의 추억

이런 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지..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되었지만 저희 가족은 조용하게 보통 여느 연휴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는 편입니다.


 이번에는 보름 정도 전에 고향을 미리 다녀왔기도 했고 코로나19 문제도 좀 있어서입니다. 보통 추석이라고 하면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이름 하에 발생하는 교통체증에 많은 분들이 즐거운 마음과는 별개로 차에서 고생는데 저는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 감사 일이죠.  




 다만 추석이라는 명절의 이름하에 특권처럼 허용되는 기름진 고칼로리 음식을 맘껏 즐기지 못하는 것은 못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칼로리 파뤼!!



 추석이 되니까 제게는 추석과 관련된 어떤 추억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기억에 제일 많이 남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제가 중학생일 쯤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죠. 이제부터 추석에는 서로 조카들에게 용돈을 주지 말자고 어른들끼리 정하신 것이죠.




 설날과 추석 때 받는 용돈은 어머니께 대부분 제 대학 등록금에 쓰인다는 명분(?) 하에 압수당한 적이 많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용하게 해 주셨기에 일종의 보너스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를 포함한 네 분의 형제는 그렇게 결정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타격이 제일 큰 아이들이 학생이었던 셋째인 우리 집과 막내 삼촌 네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들께도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이 있으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큰 아버지께서 퇴직을 하신 상태에서 당신의 자녀들은 장성을 해서 출가를 했으니 많은 조카들에게 나가는 비용이 부담되시지 않으셨을까 하고 말이죠. 아마 이 정책을 시행한 이후로는 마음이 한결 편해지셨을 겁니다.  

추석 용돈 지급전                                             지급 중지 후       

 물론 저는 어른이 되기까지 속 쓰린 추석의 추억으로 남았지만요.




 그 뒤에 있었던 또 하나의 추억은 결혼한 뒤에 있었습니다. 결혼하고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저, 아내, 남동생은 선물을 이것저것 사서 큰 집으로 갔습니다. 첫 시댁 친척들까지 만나는 자리여서 아내는 한복을 입고 갔었죠. 그런데 그 모습을 본 큰 어머니께서 한 말씀을 하십니다. "다음에는 일하기 편한 옷으로 입고 온나"라고 말이죠.




 보통 다 함께 진해의 친가에 가서도 제가 설거지를 하기에 큰 어머니의 그 말씀은 그리 반갑게 들리진 않았죠. 그 뒤로는 큰집에 가지는 않았고 금세 잊혔지만 이 사건도 나름대로 추석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추석의 추억을 곱씹고 있기에는 너무 날씨가 좋았기에 일단은 다 함께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예전에 살던 동네로 와서 나들목을 거쳐 한강으로 갑니다.




 이 동네에서 아이들과 7살 때까지 살았는데 오랜만에 다 함께 왔네요. 쌍둥이용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 지나다니던 길인데 아이들과 걸어서 오니 새롭습니다.  




 아이들이 오리배를 타고 싶다고 해서 선착장까지 갔는데 가격이 25,000원입니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돈을 보탠다면 아빠가 함께 타 주겠다고 하니 고민 끝에 타지 않겠다고 하네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참고로 저는 물을 싫어합니다.



 한강변에는 햇볕도 따사롭고 사람들도 많아서 나들이 기분을 많이 내고 돌아왔네요. 북적북적하게 친지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보내는 추석은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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