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아이들은 입이 짧습니다. 먹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으면 화딱질이 날 때도 많죠. 그런 와중에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메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초밥입니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은 음식이다 보니 가끔씩 가게 되는데 갈 때마다 저와 아내는 기겁을 합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이 초밥집에 와서는 보통 성인 남자가 먹는 만큼의 양을 먹어치우니까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부모 입장으로서 영수증 걱정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집에서 해주는 '음식이 그렇게 맛이 없나'라는 생각에 현자 타임이 오곤 합니다. 그러면서 집에서 먹이는 음식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반성의 시간도 가져봅니다.
그러던 며칠 전 제가 아이들과 예약해둔 병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늑장을 부리는 통에 하마터면 병원 진료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도착할 뻔했습니다.예상치 못한 교통체증도 한몫했고 예약시간인 네 시반의 10분 뒤에 진료가 끝난다고 일방적인 메시지를 보낸 병원도 잘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순간 애먼 아이들에게만 신경질을 내고 말았죠. 아이들에게 나중에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미안한 마음입니다. 다행히도 주차를 하고 미친 듯이 달렸고 마감 5분 전에 겨우 도착을 해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혼이 빠질 만큼 정신이 없었죠.
그렇게 병원 일정을 마친 뒤 아이들을 학원에 내려주고 저는 마트로 갔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것과 별개로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저는 안 하던 짓을 생각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그건 바로 집에서 만드는 초밥이었습니다.
마트의 수산물 매대에 진열되어 있던 광어와 연어 세트가 장을 보던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죠. 1호는 광어 초밥을 가장 좋아하고 2호는 연어초밥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런데 할인까지 하니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싶었습니다.
"그래! 오늘은 초밥이다!"
라고 결정하고 두 팩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물론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도 해주며 미안한 마음도 전하고 이 내용으로 글도 쓸 수 있으니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겠다 싶었죠.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온 뒤제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초밥을 만들겠다고 밝히는 순간 뜻하지 않은 아내의 태클이 들어옵니다. 이유는 바로 제가 사 온 회의 양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손이 크기보다는 적당한 크기의 합리적인 손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손이 큰 편인 아내에게 늘 왜 그리 손이 작냐고 구박을 자주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적게 사 왔다고 혼이 난 것입니다. 제 위대한 도전이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적당한 양을 사 온것이었는데 말이죠.씨알도 안 먹힙니다.
결국 결론은 이렇게 났습니다. 초밥은 아내가 만들고 저는 마트에 가서 회를 더 사 오기로말이죠.이렇게 돼버리면 이 이야기는 '미스터 초밥왕'이 아닌 '미세스초밥왕'이 된다고 강력하게 항변해보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입니다.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
결국 제 초밥왕을 향한 열정은 이렇게 꺾여버리고 말았습니다.아내가 초밥을 만들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마트를 향해 옮겼습니다.
저 자리는 내 자리이거늘..!!!!!
추가로 사온 회
가서 사고 돌아오니까 아이들도 집에 와있었고 제법 그럴싸한 모양들의 초밥들이 쌓여있습니다. 아이들도 배가 고픈지 '빨리빨리!'를 연신 외치며 초밥이 다 완성되기를 기다립니다.
제가 전화기를 들고부산을 떨면서 조금만 기다려줄 것을 부탁하자 아이들도 "브런치에 쓰려고 찍으려는 거죠?"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이심전심이 기특하네요.
완성된 광어와 연어초밥
연어는 2호꺼, 광어는 1호꺼
초밥은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엄청 잘 먹지는 않아서 좀 아쉬운 마음은 있었지만요. 덕분에 제가 실컷 맛있게 잘 먹었네요.
비록 이번에는 미스터 초밥왕 도전에 실패했지만 제 초밥왕을 향한 도전은 계속됩니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