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부터 아이들과 저는 평일에 주기적으로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아침 산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운동으로 매일 줄넘기를 하게 했는데 다른 약속에 비해 유독 그것만 잘하지 않아서 자주 혼이 나곤 했습니다.
그 대안으로 긴급하게 결정한 것이 아침 식전 산책이었습니다. "줄넘기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내일 일찍 일어나서 산책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이 정도로 단호해야 말을 해야 아이들이 듣지요.
첫 번째 산책
그 원대한 도전은 9월 20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더 자고 싶어서 꿈틀대던 저는!! 애들 아니고 제 얘깁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아이들에게 나갈 준비를 하자고 채근합니다. 눈을 반쯤 감은 상태에서 밖으로 나오니 첫날은 날씨가 선선한 것이 꽤 좋았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꼬불꼬불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보니 가볍게 20분 내외로 걷기에는 좋은 편입니다. 그렇다고 계속할 생각은 없었죠. 사실 저는 이번 한 번만 일회성으로 벌을 주는 것처럼 할 예정이었습니다.
"아빠, 죄송해요. 이제 줄넘기 열심히 할게요."
라는 말을 듣고 아침산책이라는 단어는 제 뇌리에서 저 멀리 안드로메다쯤으로 보내버릴 계획이었습니다. 저도 아침에 10분 더 자는 것을 선호하니까요.
그런데 상황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 180도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도 첫날 산책을 해보더니 너무 좋다고 줄넘기를 하는 대신 이렇게 계속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조용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고 시끄러운 낮이나 저녁시간보다 새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모양입니다. 공기도 좋고 기분도 좋으니 한 번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단지 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새들. 이름은.. 아이들만 안다!
그리고 저 역시 저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표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저렇게 말을 하는데
"아침산책은 오늘 한 번으로 끝이야! 만약에 아침산책을 계속하고 싶다면 줄넘기를 해야 해~~~! 흐흐흐."
이렇게 말을 바꾸는 건 또 너무 치사하잖아요. 결국 아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도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걸으면서 부족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 둘째 날부터는 또 새로운 일들이 생겨납니다. 아이들이 첫날에 단지 내의 나무에 새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먹이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주전부리로 먹으려던 허니 땅콩을 물로 씻어서 말리면 된다며 빼앗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땅콩을 새들이 자주 오는 자리에 뿌려두었는데 결국 다른 새들은 오지 못하고 제일 힘이 세 보이는 비둘기만 처묵처묵 하더군요.
땅콩을 뿌려둔 뒤 누가 와서 먹나 확인 중
그날 저녁 제게는 더 이상 땅콩이 없다고 말하니 이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새들은 쌀도 먹어요!!"
'응~ 그래 그건 알겠는데 새들한테 쌀을 주면 우리는 뭘 먹고 사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얼마나 하고 싶으면 그러겠냐 싶어서 일단은 네 뜻대로 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녁에 쌀을 씻고 쟁반에 펼치더니 선풍기로 말리고 앉아있네요.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니?
저런 정도의 지극정성이라면 제가 나중에 몸져누울 때 저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치가 올라갑니다. 다음 날이 되어 종이컵 한가득 채운 쌀을 땅콩을 뿌려준 자리에 가서 정성스럽게 펼쳐서 흩어놓습니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참새와 박새들이 와서 재잘재잘 소리를 내면서 맛있게 먹네요.
아이들도 다음 날에 와서 쌀이 모두 없어진 것을 알고 흡족해합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공생인가요? 갯벌에서 과자를 셔틀해서 갈매기 먹인지 얼마나 되었다고 집에서까지 이러니 진정한 새(bird) 형들이 되려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산책을 할 때 느끼는 또 하나의 묘미가 되기도 하네요.
아이들이 새 먹으라고 씻은 쌀을 뿌려주는 둥이들
새들과의 시간을 보냈으면 본래 목적인 산책도 해야죠. 하나의 코스로만 다니면 금방 질리니 아이들에게 다양한 코스로 가보자고 합니다. 요기조기로 열심히 경로를 개척하며 리드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제 많이 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
아직까지는 평일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 잘해나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아침마다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는데 군소리 않고 나가는 녀석들이 기특하기도 하네요. 아니면 줄넘기를 정말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가 싶어서 문득 궁금해집니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어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힘닿는 대로 열심히 추억을 쌓아보려 합니다.
한 줄 요약 : 아이들과 아직도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