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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Oct 10. 2022

이 오리를 어찌 하오리오?!

냄비 크기를 가늠하지 못해 겪은 대환장 보양식 파티



 아내가 확진이 되고 며칠 전에 격리가 풀렸습니다. 다행히 남자 셋은 이번에도 이 지긋지긋한 병원균과 아직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환자도 힘들었고 수발러도 힘들었지만 둥이들도 힘들었을 것 같아서 주말에 몸보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고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트에서 흥미로운 아이템을 하나 발견했죠. 바로 1.6kg짜리 백숙용 오리 한 마리였습니다. 1kg 정도 내외의 무게인 일반적인 닭백숙 사이즈와는 스케일이 좀 달랐습니다. 닭과 오리의 체급 차이가 이렇게 컸나 싶으면서도 생각 없이 날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헤비급 사이즈의 오리




 가족들은 틈나는 대로 30분 거리에 있는 오리백숙집을 즐겨가기에 이번에 한 번 집에서도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기 때문이죠. 물론 이것을 처음 사는 시점에 백숙을 만드는 셰프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백숙 요리를 잘하시는 아내가 해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죠. 그랬어요... 그랬다니까요...

 

 하지만 확진이 끝난 뒤에도 여진처럼 남은 후유증이 있었기에 아내의 컨디션은 격리가 끝났다고 해서 바로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계속 몸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 오리를 그냥 버릴 수는 없고 별 수 없이 제가 해야죠.



 결심을 하고 나니 행동은 빨라집니다. 일단 큰 냄비를 꺼내서 우람한 오리를 꾸역꾸역 쑤셔 넣었습니다. 그리고서는 물을 채워 넣고 남아있는 소주를 모두 부어버린 뒤 잡내를 없애기 위해서 끓이기 시작했죠.

소주 광고 아닙니다. 술 싫어해요! 내돈내산!




 물이 찬찬히 끓어가고 있는 동안 추가로 넣을 재료들을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메뉴가 아니었기에 혼자서 고군분투합니다. 요리하는 글을 몇 번 써봤다고 이제 제법 준비하는 속도도 제법 빨라졌네요. 일단 오리백숙 패키지 안에 들어있던 기본 국물용 재료를 비롯해 대파, 마늘, 양파를 가지런히 내려놓습니다.

오늘 너희의 역할이 크구나!!




  물이 조금씩 끓기 시작하자 누릿한 기름기로 냄비가 채워집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도 누릿한 불안감이 뒤덮이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바로 오리 크기에 비해 너무도 왜소한 냄비 때문이었습니다. 이 정도 냄비만 되어도 집에서 꽤 큰 편에 속하기에 오리백숙을 해내기에는 괜찮을 줄 알았던 것이죠.

저 닭다리.. 가 아니고 오리 다리를 어쩌누!!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도 되지라는 마음을 가졌던 저는 점점 끓어가는 냄비를 보면서 그때서야 이 오리백숙이 완전히 망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사실 처음에 냄비 뚜껑도 힘겹게 닫은 상태였던 터라 본격적으로 물이 끓기 시작하면 바닥이 물바다가 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리 다리는 제대로 익히지도 못해서 따로 육회로 먹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잠시간의 고민 끝에 저는 다용도실에 폭이 더 넓은 냄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더 빛이 나는 제 머리가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입니다.

 다만 이 놀라운 발견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걸 말해봐야 타박을 받을 것을 뻔히 아는 현명한 남편이니까요.  

옆집으로 이사 준비 끝!!




 이제 이사가 관건입니다. 1.6kg짜리 오리이기에 당연히 집게 하나로 집어질 체급이 아닙니다. 집게를 두 개를 사용했음에도 버티는 힘이 무섭습니다. 이 녀석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옛날 집에 정이 든 모양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집게의 힘인데 하나의 집게가 쥐는 힘이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더 세게 움켜쥐었다가는 살이 바스러질 것 같아 불안했지만 이사를 못하면 어차피 요리 자체가 끝장이기에 눈물을 머금고 약한 쪽의 집게를 꼬치구이를 하듯 살 속으로 마구 쑤셔 넣습니다. 제 옆구리가 아픈 기분이네요.

이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전완근의 힘!!





드디어 이사 성공입니다. 역시 넓은 집이 좋긴 좋네요. 대체 이게 뭐라고 큰 일이라도 낸 것 같은 희열이 느껴지네요. 이 기쁨을 초보 요리사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밤이에요~

도대체 이게 왜 감동적인 거냐!!




 넓은 냄비로 오리가 이사 가서 새로이 자리를 잡으니 제 마음도 넓어지는 기분입니다. 이제는 고기가 잘 을 때까지 팔팔 끓이는 일만 남았습니다. 원래 자주 가던 백숙집은 커다란 압력밥솥에 넣어 고온으로 찌는 방식이지만 일단 여기는 식당이 아니니까 되는대로 하겠습니다.

 중간에 가위로 살과 뼈를 열심히 자르고 미리 넣은 마늘, 파, 양파 친구들도 건져냅니다. 수고했어, 얘들아! 이제 너희의 역할은 끝났단다.

뭔가 그럴듯한 모양으로 변해가는 백숙님




그냥 이렇게만 더 익혀서 바로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런데 제가 오리백숙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신 어플 '만개의 레시피' 선생님께서 부추를 넣어 먹으면 훨!씬! 맛있다는 내용을 보고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렇게 저는 이 요리의 마지막 퍼즐을 하나 더 맞추려고 결심합니다.


 아시다시피 며칠 전 저는 할인하던 녹은 부추를 샀다가 큰 낭패를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녹은 부추를 불쾌한 냄새와 함께 씻어내면서 '내가 다시는 부추를 사나 봐라'라고 했지만 인간이야 말로 진정한 망각의 동물 아니겠습니까. 한 번의 실패로 굴할 제가 아니기에 다시 부추를 사러 달려 나갑니다.


 하지만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부추를 사고서 며칠 만에 다시 간 마트의 부추 가격이 고새 500원이 더 올라있었던 것이죠. 이번에는 할인코너를 기웃거리지 않고 눈물을 머금은 채 발길을 돌렸습니다. <합리적 소비자의 최후 2탄>을 쓰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내가!!!! 조선의 부추다!!!!




마지막 퍼즐인 부추를 잘라서 집어넣으니 모양은 제법 백숙 전문점에서 파는 오리백숙 같아 보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기 시작하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근처를 오며 가며 제가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계속 반신반의합니다. 믿음이 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제가 만든 요리 중에서 실패한 것은 거의 없었기에 믿고 먹어보라고 권해봅니다.

부추 핸섭 1차분 투하

부추 핸섭 2차분 투하




상을 차리고 백숙을 냄비채로 옮겨내니 이제는 먹을 일만 남았습니다. 엄청 덥고 힘들어서 이마의 땀이 났지만 사진에는 나오질 않네요. 억울합니다. 그래도 다들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있다며 열심히 먹습니다.

해냈다!!!  어쨌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백숙을 하느라 하얗게 불태웠더니 제 자신은 입맛이 싹 달아났다는 점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요리를 했을 때 맛이 괜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못합니다. 요리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볍게 뚝딱뚝딱 만드시는 고수분들과는 비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요리 하나 하고 헉헉거리며 힘들어하는데 그런 사람을 요리를 잘한다고 할 수는 없었죠.



 그래도 오랜만에 애를 써서 만든 음식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1시간 이상 푹 잘 끓인 덕분인 듯합니다. 맛있는 요리로 가족 모두 다 행복했던 하루였습니다. 이 보양식을 먹고 다른 가족들이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인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네요. 그리고 저도...  행.. 복... 했...  ㅜㅜ 습니다.


다만 식탁에 흘러넘치는 기름기를 닦아내는 데 추가적으로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긴 했지만요.


 


한 줄 요약 : 우리의 화가 끓어 넘치는 이유는 냄비가 작기 때문이다. 냄비를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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