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가 이틀 간의 폐점 휴업을 하긴 했지만 주말 동안 마냥 놀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부쩍 읽는 양과 시간이 줄어들었던 책도 읽어서 두 권을 마무리했고 다른 일들도 평소처럼 해나갔습니다. 그런 와중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들의 역사 발표수업 준비 지도'때문이었는데요.
개요는 대략 이렇습니다. 5학년 2학기 사회 수업에서는 한국사를 배웁니다. 반에서 네 명으로 구성된 각각의 모둠별로 임진왜란의 사건에 대한 자료를 패들렛(온라인상에서 작성 가능한 프로그램) 같은 곳에 작성하고 그걸 오늘 발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부 주제는 대략 이렇게 나뉘었다고 합니다.
1. 진주대첩
2. 행주대첩
3. 이순신 장군
4. 거북선
5. 한산도대첩
6. 명량해전
7. 노량해전
그중에서 아이들이 속한 모둠은 한산도 대첩을 뽑았습니다. 제게 뽑을 기회가 있었어도 한산대첩을 뽑았을 텐데 아이들이 운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최근 영화로도 크게 이슈가 되어 익숙한 내용이니까요.
그리고두 아이가 공교롭게 같은 모둠이었던 덕분에 준비가 훨씬 수월할 것이라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조는 한 명이 모자라서 세 명이지만 아시다시피 팀 프로젝트는 사공이 많을수록 어렵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습니다.
토요일에는 유튜브로 한산도대첩에 대해서 정리해놓은 영상들을 찾아보고 한산도 대첩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산 덕분에 수많은 한산도 대첩 영상이 생겼다
그리고는 보드판에 아이들과 함께 대화를 해나가며 원페이지 요약본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씩 정리를 해나갔습니다. 일단 세 명이 나눠서 발표를 해야 했기에 큰 줄기만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한산도 전투 이전, 한산도 전투, 한산도 전투 이후
이렇게 정했습니다.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간혹 있으면 제가 열심히 신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참고로 저의 어린 시절 꿈 중 하나는 역사 선생님이었는데 수학을 가르쳐줄 때보다 엄청 신이 났네요.
급하게 써서 날아다니는 글씨들
일요일에는 다른 한 친구를 초대해서 정리해 놓은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자료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발표 대본도 만들기로 했고요. 마인드맵 형식으로 구성된 한산도 대첩의 발표자료는 어찌어찌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요즘 온라인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작성 및 수정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인 패들렛
그런데 작지 않은 문제가 새로 하나 생겼습니다. 아이들끼리 의견 조율과 자료 작성을 마무리하는 것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대본까지는 만들지 못한 것이죠. 마음 같아서는 다 적어주고 싶었지만 그럴 거면 제가 학교를 가는 것이 낫겠죠? 아이들에게 온전히 맡겨두고 중간중간 피드백을 해주는 식으로 알려줬습니다. 일요일 밤부터 월요일 저녁까지 썼다가 지우고 새로 쓰는데 꽤 오랜 시간을 사용한 끝에 대본이 완성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일을 하면서 틈틈이 옆에서 보완할 점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부터 열심히 외워서 연습을 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특히 목소리가 작다는 지적을 들은 적이 있기에 마스크를 끼고 연습하게 했죠. 집에서는 보통 마스크를 끼지 않고 연습하다 보니 실전에서는 소리가 잘 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런 부분에서 엄격하신 모양인지 대본을 읽으면서 발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셔서 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완벽한 이해를 위해서 필요한 방식이라고 동의는 하지만 힘들게 외우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는 합니다.
다행히 오늘 발표하기 전까지 준비는 마쳤습니다. 아이들이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하길래 아침에는 용기를 심어주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5학년이 되고서부터는 부쩍 발표를 할 일이 많아져서 받는 스트레스 같아 보였습니다.
"아빠도 그동안 사람들 앞에서 수십 번 넘게 노래도 하고 소견발표도 해보고 소감도 말해보고 수업도 해보고 수업 발표도 해봤지만 단 한 번도 떨리지 않은 적이 없었어."
"다른 친구들도 똑같아. 너희들처럼 걱정이 되어서 잠을 잘 못 잤을 거야"
"심호흡 세 번을 천천히 하면 도움이 될 거야"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를 잊지 마"
라고 말이죠.
열심히 응원을 해주었지만 잔소리처럼 흘려들었는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왔을 법한 시간쯤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셋 다 발표를 잘했고 선생님께는 일곱 개 모둠 중에서 가장 잘했다고 칭찬을 들었다고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에게 수고비를 좀 받았으면 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신이 난 듯한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값을 치렀다 생각하려고 합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아이가 발표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많이 회복하게 되어서 그게 가장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토, 일, 월 동안 저도 함께 아이들의 준비를 적당히 도와주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부모 노릇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한 마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