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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가니탕? 도리곰탕? 그냥 꼬리 도가니탕!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글

by 페르세우스




저희 집 아이들은 입이 짧고 까다로운 편이지만 그래도 잘 먹는 음식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돼지갈비, 소불고기, 순댓국, 마라샹궈, 닭발, 육회, 천엽 등등 어른들이 듣기에는 흔치 않은 음식일 정도로 참 다채롭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적으로 곰탕을 좋아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일반 곰탕만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꼬리곰탕, 도가니탕을 좋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격입니다. 제 회사 근처에 유명한 설렁탕 집이 있는데 두 가지를 하나씩만 주문을 해도 4만 원이 넘었습니다. 그렇게 맛있게 한 번 먹고 나서 끝나버리는 것이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가 두 가지의 질문을 스스로 해보게 되었습니다.


1. 꼬리와 도가니를 한 번에 넣어서 먹지는 못하나?

2.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는 없을까?

3. 집에서 만들면 얼마나 들도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당연히 마트로 가서 샀죠. 도가니와 꼬리뼈를 산 뒤에 꼬리 도가니탕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날씨도 점점 쌀쌀해지고 코도 훌쩍거리는 빈도가 잦아지는데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몸보신을 위해 모험을 시도해보기로 합니다.



마트에서 산 제품은 꼬리반골과 도가니 힘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게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꼬리와 도가니라는 단어가 들어가니까 맞겠죠? 이 정도의 요리 지식밖에 없는 제가 요리를 하려고 하다니 용기인지 만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합쳐서 3만원 어치




일단 얼려져 있는 덩어리부터 큰 통에 넣어서 핏물을 빼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얼려져 있는 뼈가 녹으면서 서서히 핏물이 빠져나오는 것을 보니 제대로 시작은 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단 뭐든지 뼈가 들어가는 음식을 조리할 때 핏물 빼는 것은 기본이니까요. 공정률 10%



꼬리뼈의 핏물을 두 시간 정도 뺀 뒤에 끓여서 핏물 제거를 합니다. 맹물에 핏물을 계속 빼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서입니다. 한 번 끓여내고 물을 버리고 나니 제법 살코기도 보이고 이대로 하나씩 잡고 뜯어도 될 것 같은 모습입니다.

핏물을 빼고 나니 색상이 제법 먹음직해 보이는 꼬리뼈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겠죠? 꼬리에 대한 준비를 마무리했다면 이제 도가니도 준비해서 함께 해야 합니다. 왜 두 개를 한꺼번에 하지 않았냐, 핏물을 너무 짧게 뺀 것이 아니냐, 핏물을 저렇게 빼면 안 될 것 같은데 하고 말씀을 해주고픈 고수님들도 계실 겁니다.

선수끼리 이 정도는 너그러이 눈감고 넘어가 주셔요~

단순한 비계 덩어리처럼 보이는 도가니





도가니도 찬 물에 핏물을 빼는 작업을 합니다. 뜨거운 물로 좀 데쳐내어 기름이 나온 물을 버립니다. 이제 꼬리와 도가니가 만나는 역사적인 통일의 순간입니다. 베트남이 통일이 되고 독일도 통일이 되고 도가니와 꼬리도 통일되었듯...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음식 하나 만들면서 너무 멘트가 많이 갔네요.





꼬도가니탕? 도꼬리탕? 이름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꼬리 도가니탕으로 합체를 한 뒤 본격적으로 물을 더 넣어 끓이기 시작합니다. 한 시간을 끓이는데 생각보다 많은 기름이 올라옵니다.

제법 모양을 갖춰 나가는 꼬리 도가니탕




기름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끓일 수 있었다면 아마 저는 회사를 다니지 않고 설렁탕 장인이 되어 찾아라 맛있는 TV나 생생정보통에 출연했겠죠? 뭔가 놓친 것들이 많아 보이지만 시행착오는 감당하기로 합니다.

일단 아내가 부지런히 둥둥 떠다니는 들을 국자로 퍼내고 기름덩어리를 잘라내는 수고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만큼 합니다.

이건 노땡큐 아임 파인




그리고 어떤 곰탕을 먹든 필수 아이템인 대파도 눈물을 쏟아내면서 썰어놓습니다. 양파만 매운 줄 알았는데 대파는 썰 때마다 눈물바다를 만드네요.





몇 시간을 더 끓여내니 이제는 색깔이 비로소 먹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른 듯합니다. 고생을 한 보람이 있습니다.

드디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상태가 된 둥이네 표 꼬리 도가니탕

※ 참고로 둥이들은 이번 요리에 한해서는 기여한 바가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원했던 비주얼과 맛인지 모르지만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일단 한 번 먹여봅니다. 입맛이 생각보다 까다로운 녀석들인데 맛있다고 하네요.

어른들이 먹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도가니와 꼬리의 환상적인 하모니로 인해 입안에서 4분의 3박자의 왈츠를 추는 듯한





맛까지는 아니지만 먹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드디어 꼬리 도가니탕 한상차림 완성!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애를 많이 쓴 음식이었습니다. 기름과 핏물을 제거하는 일에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다음 번에는






그냥 돈 주고 사 먹겠습니다.




편지는 아니지만 추신 : 이 음식에는 아내 기여도가 50% 이상임을 밝혀놓습니다. 정직한 페르세우스 올림


한 줄 요약 : 그냥 밖에서 사 먹자는 말은 다 직접 해보고서 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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