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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Dec 16. 2022

악어가 된 부츠



"응, 안 돼~  사지 마~ "

 이 말은 외출한 아내가 제가 입을 옷이나 신발을 사겠다며 전화를 하면 보통 제가 자동응답기처럼 하는 답변입니다.


 본디 저는 크게 물욕이 없습니다. 엄청나게 풍족하게 자라지도 않았고 없이 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마 대학교 때부터 자취를 한 덕분(?)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물건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아내도 물건을 사는 데 있어서 따로 통제를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되려 제게 필요한 물건들을 아내가 외출을 해서 골라서 제게 묻는 경우가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앞에서 말했듯 일단은 사지 말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던 차에 어제는 오랜만에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부츠를 신고 출근을 했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3년 정도 신은 부츠가 제게 억하심정이 있었는지 파업을 하겠다며 밑창과의 이별을 선언한 겁니다.

 부츠의 몸체와 밑창은 붙어 있는 부분보다는 뜯어진 부분이 많을 정도였고 덜렁덜렁해져서 마치 입을 벌린 악어 같아 보였습니다.

마치 악어 입처럼 입을 크게 벌린 부츠




 원래 저는 신발을 매우 험하게 신는 편입니다. 공사감독이다 보니 현장을 다녀야 하고 귀찮아서 구겨신을 때도 많다 보니 빨리 겉에 생채기가 생기고 낡지만 이렇게 되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을 아내에게 하는 순간 바로 신발을 사자는 소리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일단 바로 사무실 앞에 있는 구두 수선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꼴을 하고 퇴근을 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밑창이 덜렁거리면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민망하기도 했죠. 수선집 사장님께서 신발을 보여드리면서 접착제 같은 걸로 붙여줄 수 있냐고 여쭤보니 한숨부터 쉬십니다.

악어 입을 다물게 할 구세주




"이거는 붙이는 걸로 안 되고 다 일일이 꿰매야 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열이면 열 명 모두 이렇게 물어볼 겁니다.

"그렇게 하면 얼마예요?"

"만원 주세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오른쪽 신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왼쪽 신발도 뜯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험하게 신발을 신는 건지 제품이 불량인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돈을 드리고 수선을 맡깁니다.


 일단은 새로이 부츠를 사러가는 매장에 가는 시간도 귀찮고 비용도 아까우며 제 발에 맞게 오래 함께한 신발을 버리기도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정도의 기다림 끝에 저는 새것 같지는 않지만 튼튼해진 부츠를 되돌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악어 입 같았던 부츠는 이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참 듬직해 보이네요.  

드디어 입을 다문 악어





 잠깐 동안의 창피함은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도 물건을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된 듯하고 적은 금액으로 튼튼한 부츠를 얻었다는 점에서 손해만 본 사고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줄 요약 :   이래보여도  때는 쓰는 사람입니다!! 오해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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